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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유혈사태로 피난후 커피를 파는 담배 재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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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유혈사태로 피난후 커피를 파는 담배 재배인

2009년 12월 22일

도시 유혈사태로 피난 후 커피를 파는 담배 재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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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말도씨는 카르테제나 교외지역의 빈민가인 엘 포존에서 커피를 팔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지역에는 수천명의 실향민들과 극빈 주민들이 살고 있다.

유혈사태를 피해 집을 떠난 그리말도씨는 수입이 생기는 대로 가족부양을 위해 저축하고 있다.

한편, 그는 담석을 치료해야 하기도 한다.

콜롬비아, 카르테제나, 12월 21일 (유엔난민기구)- 그리말도 헤르난데즈씨는 북 콜롬비아의 있는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당시 그가 뛰었던 축구팀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18명이 나란히 있는 사진에 손을 갖다 대며 “이 중 3명은 죽었고, 8명은 실향 중에 있어요,” 라고 했다.

사진을 보면 그는 엘 살란도에 대한 괴롭고도 즐거운 기억을 떠올린다. 그는 대다수의 동네 주민들과 같이 담배를 재배했으며, 한 가족의 가장이었으며 친구들과는 주말에 축구를 했다.

2000년 2월에 있었던 몇일 동안의 사건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무장 단체들이 볼리바 현의 마을들을 습격했으며, 동료 3명을 포함한 총 60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말도씨와 가족들을 포함한 다수의 주민들은 폭력을 피해 도시 지역으로 피신을 갔다.

도시에 살고 있는 난민들과 국내실향민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항상 새로운 난관에 부딪히며, 자신의 앞가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말도씨는 카리브해 인근의 수도, 카르테제나 교외에 있는 빈민가 엘 폰조에서 자리를 잡았다. 카르테제나 당국은 60,000명의 국내 실향민들을 등록했고 대다수의 실향민들은 엘폰조와 같은 빈민촌에서 살고 있다.

그리말도씨와 아내 그리고 2명의 아이들(셋째는 엘폰조에서 출산했다)은 9년 전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물, 전기, 가로등, 하수도 등의 시설이 없었다. 미래는 참담했지만, 그는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저는 여러 일을 시도했습니다. 철물점에서 일도 해보고 도시에서 얼마 안떨어진 곳에서 농사 일도 도왔었고요.” 라며 회상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는 농장주가 인부들 중 한명을 도둑으로 착각해 총으로 쐈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저는 혼자서 말했어요: ‘나는 학살을 피해 왔는데 이곳에서 실수로 죽고 싶지는 않아.' 저는 그리고 되돌아갔어요,” 라고 했다.

그는 엘포존의 빈민가에서 콜롬비아에서 은어로 틴토라고 불리우는 커피를팔기 시작했다. 엘폰조에는 수 만명의 고객들이 있다.

그가 주기적으로 수입을 벌고 있을 때에 집에서의 상황은 힘들었다. “실향 생활의 첫 2년간, 당시 9살의 아들 자비에는 화를 억지하지 못했다. 그는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으며 주변 학우들을 괴롭히기도 했습니다.”고 그리말도씨가 설명했다.

자비에는 엘살란도에서의 학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외상을 앓고 있다. “몇 달 전에 아들이 집에 오는길에 저희 집 앞에서 경찰을 봤어요. 그는 그 자리에서 몇 분간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는 가족들에게 제가(그리말도) 사망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했어요.”고 그리말도씨가 말했다.

16세의 딸 데드리스는 다른 문제를 겪고 있다. 데드리스의 학교 친구들은 아버지가 커피를 판다고 놀린다. “저는 딸에게 정직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딸이 겪고 있는 상황도 이해해요.” 라고 말했다.

강제로 도시로 이주를 해야했던 가족들의 상황은 가혹했다. 하지만 엘포존에서의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현재, 그들은 집에서 깨끗한 물, 전기 그리고 조명을 쓰고 있다. 이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리말도씨는 매달 200$ 정도의 수입을 올리며, 그의 아내 예니스는 아이스크림 판매로 추가로 30$의 수입을 번다.

자녀들은 대체로 잘 따라주고 있다. 자비에는 아버지의 일거리를 돕고 싶어하며, 데브리스는 이루기 힘든 꿈인 법학 공부의 꿈을 꾸고 있다. 데브리스와 그녀의 여동생, 그레이디스는 플루트와 다른 악기들을 배우는 정부지원 무료 음악 수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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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니스는 무장단체들이 수 십명의 사람들을 사살한 후

북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 엘살라도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고생은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형제 중 한명은 피신후

다른 마을에서 실향생활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피살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대신, 그리말도씨의 살림살이는 지난 10년간 좋아지고 있다. 그는 담석 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는 과거에 우거진 숲에 둘러쌓여 소박한 삶을 살고 있을 때와 비교를 하면 현재의 삶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올해 초에는, 그와 그의 아내는 학살사건이 일어난 뒤에 처음으로 엘사라도로 방문했다. 부부는 과거와 현재 주민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국가 배상 조정 위원회에서(National Commission for Reparation and Reconciliation)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목적으로 주관했다.

“우리는오랜 친구들과 다시 만난 자리에서 하염없이 울었어요. 기뻤지만 울었어요.” 라고 그리말도씨가 말했다.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길에우리 모두는 누군가가 언덕 위에서 등뒤로 총을 겨눌 까봐 걱정을 했다고 덧붙였다. “고향 친구들이 말하기를 저희의 실향 생활이 자신들의 삶보다는 낫다고 했습니다.” 라며심경을 토로했다.

콜롬비아 카르타게나, 구스타보 발디비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