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라타의 전쟁에서 살아남다: 한 리비아 가족의 이야기
미스라타의 전쟁에서 살아남다: 한 리비아 가족의 이야기
미스라타의 전쟁에서 살아남다 : 한 리비아 가족의 이야기

이 여성과 그녀의 자녀는 미스라타(Misrata)를 무사히 대피해 기뻐하고 있다. 미스라타에서 폭력 사태에 휘말렸던 많은 아이들은 더욱 공격적이거나 예민해졌다. 다른 아이들은 밤중에 계속 침대에 오줌을 싸곤 한다 ? 이는 아이들이 여전히 공포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브룩, 리비아, 4월 28일 (유엔난민기구) -토브룩(Tobruk)에서 아크람(Akram)*을 처음 만났을 때에 그는 그와 그의 가족이 최근에 겪었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몹시 말해주고 싶어했었다. 이 마흔살의 교수와 그의 아내, 어린 세 자녀는 리비아의 서부 항구 도시 미스라타를 막 대피했던 상태였다. 미스라타는 지난 몇주간 극심한 정부군의 포위 공격 상태에 처해있었다.
지난주 동안의 만남 동안에 그는 리비아의 세번째로 큰 도시이자 중요 산업 도시인 미스라타에 닥쳤던 충격적인 죽음과 파괴의 경험에 대해 떠올리며,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었다. 오늘날 그곳은 끊임없는 폭격이 가해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전쟁의 현장이 되어버렸다.“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목이 멘 듯, 그가 내게 말을 이어나갔다. “2주 전 로켓탄이 우리 집 거실로 떨어졌다. 가구, 창문, 벽 등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평소였으면 가족들이 거실에 있었겠지만, 마침 그 때에는 그들이 다른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 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참담한 현장을 벗어나고,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여정에는 그 이후로도 충격적인 사건이 계속되었다. 2월 중순에 시작된 리비아 사태로 인해 미스라타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을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미스라타는 로켓탄, 미사일, 탱크, 모든 것이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전쟁의 현장이다. 안전한 장소가 없다. 아이들이 걱정되어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아크람이 말했다.점점 줄어드는 식량, 의료품, 신선한 물과, 특히더 이상 물품들이 유입될 수 없기에 미스라타는 더 이상 민간인들이 머무를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달 초 안토니오 구테레스(Antonio Guterres)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은 이에 대해 “생명을 구하는 인도적인 지원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할 때”이며, 미스라타로의 출입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하지만 민간인들을 위해 마을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유일한 대피로가 해상이라는 점 때문에 위험에 닥쳤을 때에 대피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어느날 아크람은 그의 아파트에서 한 가족이 탈출하기 위해 그들의 전재산에 가까운 돈을지불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가려는 듯, 부부는 다급하게 그들의 세 자녀를 차로 밀어넣었다. 그 순간 갑자기 큰 폭발과 함께, 로켓탄이차로 떨어져 폭발했다.“시신의 잔해들이 길거리 모든 곳에 흩어져있었다. 너무 끔찍했다. 나는 그 아이들에 대해 아직도 악몽을 꾼다.”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크람이 말했다. 하지만 더욱 비극적인 일이 이어졌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미스라타의 고층건물에 있던 저격수에 의해 그의 자동차에서 살해되었던 것이다. 시신을 수습하기엔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그의 시신은 3주 동안이나 남겨져있었다.아크람과 그의 가족은 마침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무사히 항구로 도달할 수 있었다. 그 곳에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과 사하라 이남 지역의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들을 포함한 수백명의 다른 사람들이 배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주 동부 리비아의 토브룩(Tobruk)에 도착했고, 현재 미스라타에서 온 15가구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개인 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국제이주기구(IOM)과 같은 인도주의적 단체들에 마련된 배편으로 이번 달 내에 미스라타를 벗어난 수천명의 가족들과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크람의 사연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그들의 자녀들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아이들 중 다수는 과잉된 활동과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냈고, 끊임없이 전쟁 놀이를 되풀이했다. 다른 아이들은 밤중 침대에 오줌을 싸는 증상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행동이다. 이들은 또한 급작스러운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우리 2살짜리 후다(Huda)*는 이전과 전혀 다른 아이가 되었다.” 아크람의 아내, 모나(Mona)*가 내게 말했다. 그 때에 짙은 머리의 어린 소녀가 그녀의 무릎에 앉았다. “후다는 더욱 많은 관심을 요구하고 무례한 말들을 사용한다. 또 사람들을 계속 깨물려고 한다.”나는 후다는 다시 한번 보았다. 아이는 정말로 불안해보였고 과잉된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7살, 9살인 내 두 아들도 영향을 받았다.” 모나가 말을 이어갔다. “요즘 밤중에 침대에 오줌을 싸곤 한다. 아이들은 끊임없는 폭격과 그 소음으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그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아크람은 더더욱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그는 평화주의적 시위를 하고 있던 중에 끌려가는 젊은 남성과, 끊임없는 폭격으로 인해 잠들 수 없었던 수많은 밤들, 식량을 사러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하지만 그는 반정부군에 의해 장악된 토브룩의 사람들을 대한 이분법적 말들을 극도로 아꼈다. 토브룩에는 현재 약 12,000명의 리비아 실향민들이 머무르고 있다. 토브룩의 주민들은 미스라타를 떠나온 이들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했고, 그와 함께 지역 위원회들과 자선단체, 그리고 개인 기부자 등이 옷과 식량, 의료품 등을 기부했다. 유엔난민기구도 또한 구호 물품들을 지원했다.“토브룩의 사람들이 보여준 연대의식과 친절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 우리가 겪은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이곳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다; 마침내 우리의 공포를 조금은 떨쳐낼 수 있게 되었다.” 아크람이 말했다.
* 신변보호를 위해 가명 사용
리비아, 토브룩에서 헬레네 콕스(Helene Ca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