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과 마주한 사람들
타인의 고통과 마주한 사람들
타인의 고통과 마주한 사람들

여전히 생존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난민들은 심리적 안정에 대한
지원과 더욱 철저한 보안이 제공되는 카쿠마 난민촌 내 “보호구역”에 머물고 있다.
카쿠마 난민촌, 케냐, 12월 26일 (유엔난민기구)- 아듀 촐 비올(31)은 반대파 부족 누어족이 그의 고향 수단의 딘카 마을을 공격한 날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촐이 10살 때의 일이다. 그의 가족은 서둘러 피난길에 나섰지만 촐의 아버지가 총에 맞아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그땐 죽음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어요. 숨을 거둔 아버지 옆에 앉아 계속 일어나라며 애원했던 기억이 나요.” 촐은 당시 상황을 되짚으며 말했다. “얼마 뒤 제 아버지를 죽인 남자가 저를 끌고 갔어요.”
끔찍한 시련에서 살아남은 촐은 난민 400여 명과 함께 “보호구역”이라 부르는 곳에 지내게 되었다. 분쟁과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은 케냐 북부에 있는 카쿠마 난민촌 내에서도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고 경찰서와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보호구역에 기거한다. 이들은 철조망을 친 보호 지역에 살고 있어도 자신과 자녀들의 신변이 늘 불안하기만하다.
이 보호구역은 두려움과 고통이라는 동질감이 감도는 곳이다. 서로가 겪는 고통의 무게를 알기에 타 부족과도 허물이 없고 국적과 종교적 신념이 다른 상대방을 알아가려고 노력한다. 6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 구역에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거주자는 이웃들을 존중하는 내용을 담은 행동강령에 반드시 서명해야한다. 이 곳 난민들은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대화는 함께 밥을 먹으면서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촐은 최근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남자에 끌려가 노예와 다름없는 상태를 겪었다고 한다. 그가 초경을 하자 남자는 그를 강제로 취해 부인으로 삼았다. 그 남자와의 관계에서 몇 해에 걸쳐 세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2003년, 촐은 두 딸과 아들을 데리고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고향 사람들의 태도는 싸늘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딘카족과 누어족 사이 그나마 위태로운 평화마저 깨질 수 있다며 그가 마을에 머무는 것을 반대했다. 납치범이자 전 남편인 남자의 추격을 피해 다시 피난길에 오른 촐은 아이들과 무사히 카쿠마 난민촌에 도달했다.
촐은 두렵다. 촐이 속한 부족사회는 아이들을 부족의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누어족이 자신의 두 딸과 아들을 뺏으려고 할지 모른다. 그는 지난 6년의 세월을 보호구역에서 지냈다. 작년 남수단이 독립을 했을 때 많은 수단인들이 기뻐하며 환호했다. 하지만 촐은 행복할 수 없었다. “저한테 주어진 선택이 뭔지 아세요? 다시 고국으로, 내 아비를 죽인 남자에게 돌아가는 거에요. 그렇게 제 아이들과 생이별을 하거나 여기 남아있는 거에요.”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 남겠어요.”
현재 보호구역에 사는 인원은 촐과 그의 자녀들을 포함해 총 378명이다. 이 곳에선 유엔난민기구(UNHCR)와 협력 단체들이 구성원들의 사회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UNHCR 직원들은 최소 일주일에 한번 보호구역에 찾아와 거주민들과 상담하고 이에 따른 지원을 하고 있다. 난민 교사 두 명은 매일 아이들에게 비정규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역 무슬림 공동체가 운영하는 마드라사(이슬람 학교)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이 곳에 온 사람들 모두 평온한 삶이 한순간 무너지고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경험했어요.” 카쿠마 난민촌에서 일하는 엘리자베스 체게 UNHCR 법무관이 말했다. “저희는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호구역의 또다른 거주민 사하로 압둘라히 사이스 또한 아이들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다. 이제 28살인 이 여성이 겪은 고난의 시작은 소말리아 무장단체에 가입하려는 남편을 말리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오후, 귀가한 사이스를 기다리는 것은 군복입은 남편이었다. 당시 부부에겐 첫 돌이 지난 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둘째가 있었다. “남편한테 싸우지 말라고 애걸했어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사이스가 말한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어요. ‘난 군인이야. 너부터 내 손으로 죽일거다.'”
남편은 아내를 바닥에 때려눕히고는 목에 칼을 들이댔다. 이웃들이 달려와 사하로를 죽이려드는 남편을 뜯어말리며 차라리 아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사정했다. 남편은 사하로의 얼굴을 그었다. 그 뒤 남편은 케냐 국경쪽으로 피신하려는 사하로를 다시 추적해오더니 둘째 아이마저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케냐로 도망갈테면 어디 해봐. 하지만 명심해, 널 언제든 찾아낼 수 있어” 사하로가 처한 상황은 그의 부족에 대한 정체성마저 흔들어놓았다. 그의 국적은 소말리아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사하로는 그 후로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나온 우간다 출신 남성을 만나 재혼하기에 이르렀다. “만약에 소말리아로 돌아갈 수 있다해도 전 다른 나라 남자와 재혼했잖아요”라며 전제를 단 사하로는 이어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절 죽이고 말거에요”
34살의 수잔 두코 역시 보호구역의 거주민으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수단 내전동안 남수단이 아닌 카르툼(수단)을 지지했던 남편은 어느날 돌연 사라졌다. 그 사실을 안 남수단 군은 남아있는 가족들을 취조했고 두코의 아버지를 그의 눈 앞에서 처형했다. 이후 두코는 국경을 넘어 케냐로 넘어갔다. 피난길에서 한 남자가 그를 덮쳤는데 그는 HIV 보균자였다. 두코에 의하면 그건 분명 의도적인 보복행위였다. “저같은 사람은 다시는 수단으로 돌아가지 못할거에요.” 두코는 처절하다. “제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저와 애들을 에티오피아나 남아공으로 데려다 줄 사람을 구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 난민들에 가장 위안이 되는 건 유럽이나 호주, 북미 국가에 재정착할 수 있다는 실락같은 희망이다. “여기 사람들에게 재정착은 희망이란 말과 동의어에요,”라고 체게가 설명했다. “과거의 망령이 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해도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또한 찾아오니까요.”
케냐 카쿠마 난민촌에서, 그렉 빌스.
작가이자 기자인 빌스는 현재 동아프리카 지역을 취재하며 유엔난민기구를 위해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