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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난민 청소년, 튀니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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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 난민 청소년, 튀니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다

2013년 1월 11일


코트디부아르 난민 청소년, 튀니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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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델(Abdel)이 튀니지의 상징 중 하나인 자스민 꽃 모양을 본 딴 그의 첫 장신구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추차(CHOUCHA) 난민촌, 튀니지, 1월 10일 (유엔난민기구) - 장신구 제작은 청소년인 압델*이 튀니지 난민촌의 삶을 감내하고 비극적인 과거를 극복하여 희망적인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요즘 튀니지에서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16살 압델은 자신이 작년 3월부터 살고 있는 추차 난민촌을 방문한 유엔난민기구 관계자에게 말했다. 압델은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로 유엔난민기구의 보호대상자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추자 난민촌이 폐쇄되는 6월 전까지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튀니지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

압델은 벤 가르단(Ben Guerdane)과 리비아(Libya) 국경 사이에 위치한 난민촌에서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을 외롭고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는 “추차에서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어 점차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엔난민기구와 덴마크 난민 의회(Danish Refugee Council)가 튀니지 직업 훈련 기관(Tunisian Agency for Vocational Training)의 도움을 받아 공동 기획한 시범 기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난달부터 압델은 한결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추차에서 북서부로 14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가베스(Gabes) 마을의 수공예 교육 및 훈련 센터 (Centre for Handicrafts Instruction and Training)에서 시행되는 장신구 제작 강좌를 선택했다.

유엔난민기구의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석고 조각과 조형, 조립 및 용접 기술, 컴퓨터정보 기술과 같은 과목의 강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강좌들은 가베스 혹은 벤 가르단 마을에서 진행된다.

추차를 비롯한 도심지역에 살고 있는 백여 명의 난민들이 이 다섯 달짜리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이 중 15명은 압델처럼 장신구 제작 수업을 듣는다. 튀니지 남부 지역의 유엔난민기구 기획관으로 있는 니콜 도스 레메디오스(Nicole dos Remedios)는 프로그램의 목적을 “난민들이 새로운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난민들의 지역통합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압델은 같은 반 급우인 난민과 튀니지인들과 함께 장신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들은 강좌기간동안 센터에서 식사하고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이와 더불어 휴일에는 다른 난민은 물론 튀니지인들과 새로운 친분을 쌓게 된다.

압델과 같은 사람들에게 이 강좌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신감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힘이 된다. 압델의 부모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코트디부아르를 떠나야 했고 리비아에 정착해 압델을 낳았다. 가족은 즐리텐(Zliten) 해안 지역에서 살았는데, 압델의 어머니는 그가 고작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죽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에 대한 반란이 일어난 2011년 2월 이후, 리비아에서 이주노동자 혹은 비호신청자 신분으로 살아가던 사하라 사막 이남 출신의 아프리카인들은 종종 카다피 용병으로 의심을 받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했다.

2011년 5월, 복면을 쓴 무장 폭군들이 압델의 집에 침입하여 그의 여동생을 강간하고 살해했으며, 그들은 저지하는 아버지 역시 죽였다. 압델은 구치소에 끌려가 그로부터 열 달간 구금되었다. 그는 “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한 방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우리가 미스라타(Misrata)라는 도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회상하며 몇몇 사람들은 구치소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열 달 뒤 석방된 압델은 국경을 넘어 추차로 향했다. 당시 추차는 2011년 3월을 기점으로 리비아의 위험을 피해 도망친 수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었다. 튀니지에 머물거나 리비아 등의 출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추차에 남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은 제3국에 정착했다.

기후 조건이 좋지 않은 추차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압델은 스스로 무언가 하기로 결심했다. “난민촌에서 매일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처음 시작한 것이 이 교육이다.” 그는 말했다.

오늘날, 1,123명의 난민과 22명의 비호신청자를 포함한 총 1,358명의 사람들이 추차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다. 약 4 백 명의 난민이 재정착 허가를 받지 못해 유엔난민기구는 사회경제적 통합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직업훈련강좌들은 이 계획의 일부이다. 유엔난민기구는 (미성년자인) 압델의 친척들을 코트디부아르에서 찾고 있기도 하다.

강좌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젊은 남성이지만, 여성도 소수 있다. 덴마크난민의회의 프로젝트 관리자인 장마리아 핀토(Gianmaria Pinto)는 지금까지 강좌들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겨울 방학 전 마지막 강연을 들은 난민들은 추차로 돌아가지 않길 바랐다.”며, 현재 더 많은 사람들이 수강신청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압델은 추차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강좌는 나에게 새로운 희망과 학업을 이어갈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잠을 푹 자고 있다. 지금처럼 개선된 삶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 신상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음.

달리아 알 아치, 추차 난민촌, 튀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