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ites icon close
Search form

해당 국가 사이트를 검색해 보세요.

Country profile

Country website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 선물 안고 집으로 돌아오다

뉴스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 선물 안고 집으로 돌아오다

2013년 2월 19일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 선물 안고 집으로 돌아오다

20130218 Sudanese lost boy.jpg
사진 속 흰 셔츠를 입은 제이콥 아템(Jacob Atem)이 남수단의 종레이(Jonglei) 주에
자신이 설립한 진료소에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워싱턴 디시, 미국, 2월 18일 (유엔난민기구) - 제이콥 아템은 ‘의료'라는 선물을 안고 고향인 남수단으로 돌아왔다. 20여 년 전 전쟁은 그로 하여금 집을 떠나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게 했고, 그는 12년 전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국 시민으로 귀화한 그는 작년 4월 고향인 마르(Maar)에 진료소를 연 이후 종레이 주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의료를 제공해왔다.

“한때 파괴되었던 이 집을 재건하는 일에 내가 한 부분이 되었다.” 아템은 (은유적으로) 말했다. 그는 2001년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미국 도시에 재정착한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이라 불리는 3천6백 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유엔난민기구를 포함해 과거 그에게 ‘투자'해준 사람들과 단체들에게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1983년부터 2005년까지의 계속된 수단의 남북전쟁 동안 수단 소년 약 2만 명이 고아가 되거나 가족과 집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들 중 많은 수가 미국에 성공적으로 재정착했고 아템처럼 2011년 7월 독립을 쟁취한 남수단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도움은 시험기를 거치고 있는 남수단 같은 신생국가에는 필수적이다.

긴 내전 동안 남수단의 사회기반시설은 파괴되었고, 폭력사태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실향민이 되었다. 의료와 교육시설의 충족이 최우선사항이었기에 아템과 역시 난민 출신인 루알 뎅(Lual Deng)이 비영리 기관인 남부 수단 의료 기구(Southern Sudan Health Care Organization)를 통해 개소한 진료소는 매우 환영을 받고 있다.

아템은 진료소 직원인 의사 1명, 직원 2명, 선임 간호사 1명, 실험실 기술자 1명과 약사 2명이 하루에 환자를 100명가량 진료한다고 유엔난민기구에 말했다. 많은 환자는 우간다와 케냐 난민촌에서 오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말라리아의 치료를 받고 간다.

진료소는 미국 내 후원자들과 국제 비정부기구의 지원으로 필요한 보급품과 장비를 마련하고 있지만 군 의무병들로부터도 일정 도움을 받고 있다. 아템은 유엔난민기구와 같은 유엔 기구들과 남수단 보건부 등에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금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템은 언제나 실천가이자 생존자였고, 그와 같은 처지에 있는 수단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하리라 다짐한다. 난민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힘든 도전들에 직면해왔다.

북부에서 온 민병대가 그의 집에 쳐들어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을 때, 그는 겨우 예닐곱 살이었다. 북새통에 가족과 떨어진 그는 결국 사촌 마이클(Michael)과 함께 도망을 치게 되었다. 아템은 “다행히도 그가 나를 안고 갔다. 내가 혼자 힘으로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회상했다.

두 소년은 그 후로 수년간 숲 속에서 야생동물과 무장세력을 피하고, 많은 소년들의 생명을 앗아간 질병과 피로 등을 이겨내며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Ethiopia)의 난민촌에서 얼마동안 머문 후, 유엔난민기구가 운영하고 있는 케냐 북서부의 카쿠마(Kakuma) 난민촌으로 옮겨갔다. 그들은 그곳에 9년간 머물며 기초교육을 받았고 2001년 미국 미시간(Michigan)에 재정착했다.

아템은 항상 그의 고향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다림의 과정은) 좌절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며, “내 조국이 겪고 있는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길 계속해서 바랐다. 내일이면 남수단이 괜찮아질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은 2005년까지 이어졌고 독립까지는 6년이 더 걸렸다. 현재까지도 몇몇 지역에는 여전히 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수만 명의 수단 사람들이 수단을 떠나 남수단으로 도피한 상태다.

비록 세기가 바뀌어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아템은 그가 15살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유엔난민기구에게 상당한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난민기구가) 우리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줬다.”고 강조했다.

아템은 주어진 기회를 열심히 활용해 미시간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스프링 아버 대학(Spring Arbor University)과 미시간 주립 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에 진학했다. 현재 그는 플로리다 대학(University of Florida)에서 의료 서비스 연구 관리 및 정책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다.

학업을 마친 후 아템은 남수단에 돌아가 진료소를 병원으로 바꿔 운영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돌보는 환자 수를 유지하려면 결국 병원으로 전향해야 할 것”이라며 진료소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라난 곳에 대한 열정 때문이며, 같은 곳에서 자랐지만 나만큼 운이 좋지는 못했던 사람들을 돕기 위함이다.” 아템은 말했다.

트레버 알포드와 나탈리 그린, 워싱턴 디시, 미국

진료소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http://www.sshco.org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