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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공감대: 유엔난민기구 2013 난센 난민상 수상자 안젤리크 수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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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공감대: 유엔난민기구 2013 난센 난민상 수상자 안젤리크 수녀의 이야기

2013년 9월 18일

아름다운 공감대: 유엔난민기구 2013 난센 난민상

수상자 안젤리크 수녀의 이야기

먼지로 가득한 둔구 (Dungu) 지역을 거닐다 보면, 빈곤과 불안정함으로 가득한 콩고 민주공화국의 한 귀퉁이인 이곳에서, 지난 5년간 안젤리크 나마이카 (Angelique Namaika) 수녀의 도움을 거쳐간 수백명의 여성들을 만날수 있다. 로마 카톨릭계 수녀인 그녀는, 이 많은 여성들을 본인의 딸들이라 일컫으며 아픔을 지닌 이들이 부서진 삶을 재건할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

유엔난민기구는 오리엔탈 (Oriental) 지방에서 “신의 저항군 (The Lord's Resistance Army: LRA)” 으로 불리는 반군의 잔혹한 폭력에 희생양이 된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해 헌신하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여 안젤리크 수녀를 올해의 난센 난민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이 소식은 콩고 북동부 지역에서 안젤리크 수녀의 도움의 손길을 거쳐간 2,000 여명의 여성과 여자 어린이들에게 크게 환영 받을 만한 결과이다. 안젤리크 수녀가 이러한 수많은 여성들과 깊이 교감 할수 있는 이유는 그녀 또한 강제적인 실향의 아픔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안젤리크 수녀도 지난 2009년에 있었던 LRA 반군의 둔구 지역 습격으로 인해 피난길에 오른 경험이 있다.

LRA 반군의 포로가 되었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안젤리크 수녀도 강제 실향살이를 하면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냈다. 안젤리크 수녀는 피난길에 오르기 1년전부터 둔구 지역에서 반군의 잔혹한 폭력으로 인해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여성들이 보여준 용기와 인내를 보며, 이러한 피해자들을 위해 더 많은 일들을 해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2008년부터 안젤리크 수녀는 그녀가 몸담고 있던 인도주의단체인 “재통합 발전센터 (Centre for Reintegration and Development: CRAD)” 를 통해 취약한 상태에 놓인 여성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센터를 통해 도움을 받는 많은 여성들은 반군에 의해 납치되어 폭행과 추행 또는 강간을 당한 경험이 있다. 이런 씻을수 없는 상처로 인해 많은 피해 여성들이 사회 적응에 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안젤리크 수녀는 피해자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해 이들에게 장사하는 법과 글을 가르치며, 직업을 찾을수 있도록 도와주고, 거처를 제공하며, 결코 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활동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되지만, 안젤리크 수녀가 유엔난민기구의 셀린 슈미트 (Celine Schmitt) 에게 전한 그녀의 멈추지 않는 힘의 원동력에 관한 이야기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안젤리크 수녀는 “2년 전 어느날 성당에 있는데, 누군가 와서 밖에 딸이 기다린다고 전해줬다. 조금은 어리둥절한 채로 밖에 나갔는데 어느 소녀가 갓난쟁이 아기를 안고 길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숯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녀를 내가 돌보고 있는 여성들이 거주하는 센터로 데려 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어 “로즈 (Rose, 16 가명) 는 무려 1년 8개월동안 LRA 반군의 포로로 잡혀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녀는 우간다 군대의 도움으로 구출 되었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으며, 성병에 감염돼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어머니를 찾으러 둔구에 왔지만, LRA 반군에 의해 몸이 더러워졌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는 로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 한다.

안젤리크 수녀는 "오갈데가 없어진 로즈는 숲속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숯을 파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존 방법이 없었다. 로즈의 아들은 병에 걸렸지만 병원에 데려 갈 돈이 없었다. 나는 이 모자를 도저히 그렇게 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안젤리크 수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둔구에 오기전부터 많은 여성들을 도와왔다. 나는 모든 여성들이 어떠한 상황에도 올바른 교육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여성들은 스스로 돈을 벌어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바느질, 제빵, 그리고 요리 기술 등을 가르친다.”

그녀는 로즈에 대해서 “로즈를 처음 만났던 당시 비쩍 말랐었다. 생기를 되찾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선 많이 먹어야한다고 말해줬다. 그녀에게 제빵과 바느질을 가르쳤다. 이틀이 지난 뒤 로즈는 직접 구운 만다지 (mandazis, 도넛) 를 팔아 돈을 벌었다. 그녀는 지금 시장에서 만다지를 팔고 옷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한다. 제일 처음 로즈의 소원은 본인 소유의 재봉틀을 갖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재봉틀을 구입해 그 소원을 성취했고, 두살베기 아들은 건강을 되찾았으며, 어머니와의 화해도 성공했다,” 고 덧붙였다.

안젤리크 수녀는 이어서 시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처럼 마음 고생이 심했던 시몬 (Simone, 45 가명) 은 과부였다. 시몬의 남편은 2005년 LRA 반군에 의해 살해 되었다. 그 후 몇해간 그녀는 아홉명의 자녀들과 함께 살 곳을 잃고 길거리를 방황했다. 나는 그녀를 데려와 제빵 기술을 가르쳤다. 시몬은 이제 아이들의 학비를 스스로 해결 할 수 있게 되었다.”

안젤리크 수녀는 “나는 공짜로 먹이고 재워주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삶을 복원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친다. 피해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가진 두 손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자립할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이 수입을 창출할수 있게 되면, 가족들을 돌볼수 있고 아이들도 학교에 보낼수 있다,” 고 말한다.

이어 그녀는 “나는 여성들에게 글도 가르친다. 그녀들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대외적으로 그들의 의견을 낼수 있어야 하며, 여성을 교육 시키는 것은 마치 나라 전체를 교육 시키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자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곧 어머니들이기 때문이다.” 라고 덧붙였다.

안젤리크 수녀를 통해 파트리샤의 이야기도 들을수 있었다. “파트리샤 (Patricia, 가명) 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그녀의 삶은 나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현재 45살이고 12명의 자녀를 슬하에 두고 있다. 두 아들은 LRA 반군에게 납치 당했고, 남편은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그녀는 내가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파트리샤는 평생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지만, 지난 1년간의 노력 끝에 이제 그녀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젤리크 수녀는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들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같은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함께 있는 것이 때로는 도움이 된다. 우리는 함께 장난을 치고, 웃고, 노래를 부른다. 글쓰기 시간에는 함께 문제를 논의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면 고통이 줄어들고, 그녀들이 행복하면 가족 전체가 행복해진다,” 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또 하나 굉장히 인상 깊은 것은, 나와 함께 일하는 많은 여성들의 남편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하루는 내가 여성들과 함께 요리를 해 둔구 마을 센터의 잔치를 준비한 적이 있다. 행사가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내가 여성들을 모두 집에 데려다줬다. 어느 한 여성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내가 그녀의 남편에게 우리가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히 그는, 내 아내가 당신과 함께 있을땐 안심할수 있다고 말했다,” 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끝으로 안젤리크 수녀는 겸허히 말을 이어나간다.

“나는 이 여성들을 돕겠다는 의지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내 자신과 약속한 바가 있다. 이들은 나를 어머니로 생각한다. 만일 나에게 신발 한켤레만 남는다 해도, 이 여성들을 돕기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것을 기꺼이 내어줄 것이다. 그녀들의 힘과 용기를 보며 내가 더 큰 위로를 받는다. 이들은 너무나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 실향의 아픔을 겪고, 가족을 잃고, 폭력에 짓밟히고, 강간을 당하고, 때론 남편을 잃고 가족의 생계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여성들은 오늘도 배움과 일손을 놓지 않는다.”

*보호 차원에서 모든 이름은 가명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