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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곳으로의 이동: 이라크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과 합류한 코바니 출신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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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곳으로의 이동: 이라크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과 합류한 코바니 출신 난민

2014년 10월 25일

안전한 곳으로의 이동: 이라크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과 합류한 코바니 출신 난민 image 13.jpg 폐질환을 앓고 있는 난민 모하메드 알리(Mohammed Ali, 55)가 터키와 이라크 쿠르디스탄
사이의 국경지대를 지나 가윌란 난민촌(Gawilan refugee camp)으로 향하는 버스에 누워 있다.

이브라힘 카릴 국경 지대, 이라크, 10월 13일 (유엔난민기구) - 고향인 시리아 코바니 지방을 탈출하는 사람들에게 짐을 챙기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단 몇 분이었다. 사람들은 귀금속, 가족사진, 혹은 자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등을 챙겼다. 하지만 55세의 모하메드 알리(Mohammed Ali)가 챙긴 것은 산소탱크였다.

알리는 터키 국경을 넘어 이라크 쿠르디스탄 국경지대에 도착한 직후, “나는 폐질환을 앓고 있어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지금 가족과 함께 있다”고 유엔난민기구에게 말했다.

그는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방 정부가 지난 10월 10일 난민을 위해 국경을 개방한 후 이곳을 통과한 약 2,500명의 시리아 코바니 출신 쿠르드족 난민 중 한 명이다. 관계 당국은 앞으로 수많은 사람이 추가적으로 국경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슬림 과격 반군인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ISIS)'가 지난 9월 중순 코바니를 침공했을 때 알리와 그의 가족은 들려오는 포탄 소리와 식량과 전기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외각에 위치한 그들의 집을 떠나지 않고 최대한 오래 머물렀다.

알리는 주변 마을이 전쟁권에 들어서고 지인들이 죽거나 피난할 때조차 집을 떠나길 거부했다. 알리는 “가족에게 나를 두고 떠나라고 했지만 그들은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했다”고 말했다.

아들들은 노쇠하고 걷지 못하는 알리와 그의 산소탱크를 차로 옮긴 후 다른 물건은 모두 남겨둔 채 터키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에 도착한 가족은 강제로 차를 버려야 했으며, 아들들은 알리를 직접 안아 터키로 이동했다.

코바니를 떠난 200,000여명의 사람 중 상당수가 시리아 국경 지대의 터키 마을과 도시로 피난했다. 알리와 그의 가족은 마르딘(Mardin)으로 향해 남은 돈으로 견뎌보려 노력했다.

알리는 이라크 국경지대 내 콘트리트로 만들어진 환승지역 안에 마련된 매트리스에 누어 산소마스크를 통해 숨을 쉬며 그와 그의 가족이 시리아를 떠난 후 터키에서 2주 동안 겪은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를 “매우 좋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표현하며, “가진 돈 전부를 숙박, 식사, 이동을 위해 썼다”고 덧붙였다.


그는 터키에 있는 동안 산소탱크를 두 번 충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에게 치료받기 위해 현지 병원을 찾았을 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말한다.

터키에 새로이 도착하는 많은 시리아 난민이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하며 터키의 높은 물가와 맞닥뜨린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쿠르디스탄 국경 개방 소식을 들은 알리와 가족은 잠시 묵고 있던 마을을 떠나 국경으로 향했다.

알리는 환승지역에서의 짧은 기다림 후 아들의 팔에 안겨 3시간 여 여정을 통해 이라크 쿠르디스탄 지역 수도 아르빌(Erbil) 근처의 가윌란 난민촌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난민촌에서 그와 다른 난민은 유엔난민기구에 등록될 것이며 쉼터와 음식, 매트리스와 담요 등을 포함한 기초지원 물품을 지원받을 것이다.

알리와 그의 가족은 (유엔난민기구에) 등록 후 아르빌에서 거주하고 있는 그의 형제와 상봉하길 바라고 있다. 지친 상태로 눈물을 참으며 알리는 그가 다시는 코바니에 돌아가 고향집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 가족과 함께 있고 안전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는 “이후 나의 미래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라크 이브라힘 카릴 국경지대에서 찰리 던모어(Charlie Dunmore)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