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ites icon close
Search form

해당 국가 사이트를 검색해 보세요.

Country profile

Country website

유엔난민기구 서포터가 된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 난민에 대해 알리다

뉴스

유엔난민기구 서포터가 된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 난민에 대해 알리다

2015년 3월 20일

유엔난민기구 서포터가 된 ‘수단의 잃어버린 소년'

난민에 대해 알리다

‘잃어버린 소년' 게르 두아니(Ger Duany)가 케냐 다답(Dadaab) 난민촌을 방문했다.

영화배우가 된 두아니는 미국에 재정착하기 전, 이곳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나이로비, 케냐, 3월 9일 (유엔난민기구) - 할리우드 영화배우이자 모델인 게르 두아니가 지난 월요일 유엔난민기구의 ‘유명인 서포터'로 임명됐다. 그는 1983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진 수단 내전 당시 부모를 잃고 강제이주를 당한 수많은 ‘잃어버린 소년'들 중 한 명이다.

“유엔난민기구의 서포터로 난민을 도울 수 있게 되어 매우 영광이다. 개인적 책임감에 대한 부담도 느낀다”고 36세의 두아니가 말했다. 현재 미국 시민인 그는 자신의 출연작 “뷰티풀 라이 (The Good Lie)”를 소개하기 위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를 방문 중이다. “뷰티풀 라이”는 수단 ‘잃어버린 소년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두아니는 영화에서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소년들' 중 한 명을 연기한다. 그는 에티오피아와 케냐에서 난민이 되기 전, 그의 가족과 떨어진 채 소년병으로 지냈고, 이후 미국에 재정착하였다. 그는 2004년 개봉한 “아이 하트 허커비즈 (I ♥ Huckabees)”로 데뷔하여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는 늘 고향에 대해 걱정하고, 지속적으로 남수단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남수단은 2011년 1월 수단으로부터 분리독립 하였지만, 2013년부터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분쟁으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의 친척 중 일부는 최근 전쟁을 피해 에티오피아와 케냐로 피난했다.

월요일 공개된 메시지를 통해 두아니는 “유엔난민기구 유명인 서포터가 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내 여정이 여러 변화를 거쳐 제자리로 되돌아온 것 같다”며 최근 남수단 사태를 되돌아보았다.

그는 “지난 14개월 동안 남수단은 2백만 명 이상의 피난민을 발생시켰다. 우리는 불과 4년 전 독립의 기쁨을 누렸다. 나 역시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갔었다”며, “우리의 고향이 이렇게 빨리 또 다른 분쟁에 휘말릴 것이라고는, 우리 어린 시절의 악몽이 또 다른 세대에 재현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아니는 국제 어머니의 날(3월 8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반복되고 있는 여성과 여자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 기지, 지방 혹은 이웃 국가의 난민촌으로 이주해야 하는 남수단 여성들에 대해 생각했다”며, “전 세계 여성 난민과 국내 실향 여성들과 같이, 이들은 자녀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나는 내 어머니와 형제를 통해, 그리고 남수단의 여성들을 통해,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이고, 그들의 생사를 모르는 고통이다. 그 아픈 고통은 전쟁이 시작된 2013년 12월 남수단에 다시 돌아왔다”고 말했다.

두아니는 자신의 과거가 목가적인 남수단에서의 유년시절부터 남수단 내전 중 끌려가 소년병으로 지냈던 시간, 난민, 배우, 세계적인 모델, 그리고 미국에서의 평화 운동가로의 활동까지 다양한 것을 거쳤다고 회상했다. “16살의 나이로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대학 과정을 마쳤다.”

그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많은 사람이 그랬듯, 죽을 뻔한 순간들이 많았다. 다른 곳에 사는 또래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남수단) 고향의 아이들은 살인과 파괴, 혼란의 악몽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가슴 아프다”고 그가 말했다.

두아니는 또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세대의 잃어버린 기회와 인명 피해의 비용을 계산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정신적 지주들인 어머니들과 자매들이 강제이주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한 짐을 지는 것이 마땅한가”를 물었다.

유엔난민기구의 유명인 서포터로서 두아니는 영향력 있는 그룹의 소속원이 되었다. 특사 안젤리나 졸리를 필두로, 유엔난민기구의 서포터 그룹은 난민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후원을 독려하는 데 힘쓰고 있다. 두아니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며, “이 일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변화를 위한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두아니는 유엔난민기구와의 여정이 그가 에티오피아 이탕(Itang)난민촌에 지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며 “22년 전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케냐 다답으로 이주했고 이후 미국에 재정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년, 그는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케냐 카쿠마(Kakuma) 난민촌에서 그의 어머니 및 14명의 다른 가족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에티오피아 서쪽의 감벨라(Gambella)도 방문했다. 두아니는 “그곳에서 국경을 건너는 난민들을 보고, 비행 중 그들이 겪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그때 난민을 위한 목소리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