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내 최근 폭력사태, 수많은 이산가족 만들어
남수단 내 최근 폭력사태, 수많은 이산가족 만들어
남수단 내 최근 폭력사태, 수많은 이산가족 만들어
공습은 학생들이 책을 버리고 임산부들이 생명을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샌드라가 임시 거주지에 앉아 가족들을 바라보고있다. 눈물이 그녀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뺨에 자국을 남기며 흘러 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주위 바닥에 지쳐 누워있다. 남자들은 하룻밤 지낼 곳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엄마들과 소녀들은 점심으로 죽을 준비하고 있다. 샌드라는 홀로 불확실함과 격렬한 감정의 바다에 서있다. “나는 내 부모와 형제들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라고 하며 그녀는 울었다.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나아요. 그것은 나를 슬프게 해요.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요.”
14살 샌드라는 남수단 군대가 파족 마을을 공습한 후인 4월 3일경 우간다로 피난을 떠났다. 공습으로 수만명의 사람들이 집을 떠나 덤불에 숨어야만 했다. 7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주 동안 응고모로모를 거쳐 우간다로 건너갔다.
그중 600명은 부모로부터 떨어진 아이들이다. 그들은 아주 위험한 여정을 혼자 여행했다. 어떤 여자아이들은 집에서 멀리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오거나 장작을 수집할때 공습이 시작되었다. 과일과 채소를 지역 시장에서 팔던 청소년들과 샌드라와 같이 학교에 있던 학생들 역시 공습을 경험했다.
“총격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학교에 있었어요.”
“총격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학교에 있었어요. 우리는 영어 단어를 배우고 있었어요. 나는 너무 두려웠어요. 저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서 도망치라고 소리 질렀어요. 나와 친구들이 가장 앞에 있었고 선생님은 가장 마지막으로 교실을 나오며 남아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어요.”

남수단 난민들이 응고모로모에서 소지품을 들고 우간다 국경을 넘고 있다. 그들은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은 이후 파족마을에서 피난을 떠나고 있다.
샌드라와 다른 학생들은 이틀 동안 음식과 물 없이 덤불을 오랜 기간 걸어서 응고모로모에 도착했다. 샌드라는 아직도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학교에서 입고 있던 교복을 입고 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이 바닥에서 자는 것을 보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길가에 앉아있었지만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긴급상황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유엔난민기구는 ‘보호 데스크 '를 국경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는 가장 도움이 필요한 대상인 (성폭력의 생존자, 장애인, 노인, 편모,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 동행자가 없는 샌드라와 같은 미성년자)등의 신분을 확인하고 지원하기 위함이다. 응고모로모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팀은 난민 대표들과 가깝게 일하면서, 일부 아이들을 부모와 재상봉시키고 나머지를 위해 임시 위탁 시설을 마련하였다.
샌드라는 잠시 이모와 재상봉했다.
“나는 이모가 나와 같이 있었으면 했지만, 이모는 나의 부모님을 찾기 위해 다음날 다시 남수단으로 돌아갔어요”라고 샌드라는 말했다. “나는 다시 혼자에요”
“내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누가 내 아이들을 돌보겠어요?”
26세의 크리스탄 아찬은 오래된 콘크리트로 된 대기실 그늘 아래 먼지 쌓인 짚단 매트에 앉아 그녀의 신생아를 팔에 안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세상으로 생명을 데려온 출산의 기쁨은 거의 보이지 안는다. “아이가 건강한 것은 신께 감사드려요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아요. 내 남편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누가 내 아이들을 돌보겠어요? 나는 괜찮지 않아요.”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며 이야기했다.
파족마을 선생님이었던 크리스틴은 폭력사태가 마을을 분열시켰을 때 임신 마지막 달 이었다.
“집에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총소리를 들었어요.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났고, 나는 덤불 속으로 나의 두아이와 할머니를 데리고 달려갔어요. 우리는 음식과 물 없이 사흘 동안 걸었어요. 피난 도중에 출산할 것 같았어요. 배에서 통증을 느낀 나는 유산 할것 같아서 두려웠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스틴은 안외치 바르시티를 우간다에 도착한 이튿날에 출산하였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내 여자 형제 비아트리스를 찾았어요. 나와 걱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는 것이지요. 나의 아이들은 계속 아빠에 관해서 물어봐요. 나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살아있고 우리와 곧 함께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나는 불길한 느낌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있어요.”
2013년 남수단의 내전 이후에, 가족들은 갈라졌다. 폭력과 기아, 그리고 민간인을 향한 무분별한 공격은 즉각 대량 탈출로 이어졌고, 국내 실향민과 난민의 숫자를 각각 190만명과 170만명으로 증가시켰다.
“여자와 아이들은 이 무의미한 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
우간다는 최근 83만 4천명 이상의 남수단 난민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는 2017년 한 해 동안 새롭게 도착한 19만 4천명을 포함하고 있다. 이 중 86퍼센트는 여성과 아동이며, 부모나 법정후견인을 동반하지 않은 2만1천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하고 있다.
“여자와 아이들은 이 무의미한 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라고 유엔난민기구의 우간다 대표인 본엘 카탄데가 말했다. “갈등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우간다와 같은 수용국에서는 폭력, 트라우마와 학대를 경험한 여성과 아동들에게 특별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기금 상황은 심각합니다.”
유엔난민기구와 파트너는 우간다에 있는 난민들에게 음식, 물, 주거지 그리고 생계 지원을 위해 5억5천8백만 달러이상의 기금이 필요하다.
“2017년 4월까지, 우리는 10 퍼센트 이하의 기금을 받았습니다. 국제 공동체는 현재 가장 급격하게 증가하는 난민 위기에 더 많은 책임감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들 또는 학교에 갈 수 없거나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평범한 것들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미래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출처: 로코 누리, 응고모로모, 우간다 By: Rocco Nuri in Ngomoromo, Ugan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