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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활동가가 실향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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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활동가가 실향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

2019년 9월 25일

콩고의 활동가가 실향민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
인권 활동가인 에바리스테 음파움(Evariste Mfaume)은 유엔난민기구 난센 난민상(UNHCR Nansen Refugee Award) 아프리카 지역 수상자이다.


6월 어느 날, 에바리스테 음파움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 위치한 공동 농장을 방문하자 한 여성이 일을 멈추더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를 맞이했다. 청청한 카사바 나무로 가득한 들판은 그들의 노동의 결실이었지만, 이는 음파움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콩고 농부인 웅와 상가니(Ungwa Sangani)는 “우리는 에바리스테에게 너무나 감사해요. 왜냐하면 이 농지를 일구기 위해서 그가 정말로 열심히 일했거든요”라고 말한다.
46세의 음파움은 분쟁으로 인해 실향민이 된 콩고 사람들과 그들을 수용하는 지역 사회들의 권리를 수년 동안 옹호해왔다. 음파움은 그들이 돈을 벌고 삶을 재건할 수 있도록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을 받을 것을 주장했다.
그의 공로를 인정 받아 음파움은 유엔난민기구 난센 난민상 아프리카 지역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명망 있는 상인 유엔난민기구 난센 난민상은 매년 난민들과 실향민들을 위해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수상자는 10월 2일에 발표될 것이며, 10월 7일에 제네바에서 열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것이다.
음파움은 2003년에 그의 고향인 남키부(South Kivu) 지역에서 인류를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연대(Solidarite des Volontaires pour l'Humanite)를 설립했다. 그 지역은 수년 동안 혼란과 폭력 사태를 겪어왔다.


“제 안에서 저의 에너지를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하는 데 쏟으라는 소명의식 내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느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수차례 피난을 간 경험이 있는 음파움은 “저는 굉장히 어려운 정치적 환경 속에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살해 당하고, 여성들은 강간 당하며, 사람들의 재산이 약탈 당하고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제 안에서 저의 에너지를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하는 데 쏟으라는 소명의식 내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음파움은 처음에 콩고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탄자니아와 부룬디의 상황을, 다음으로는 더 많은 나라들의 상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2005년에 탄자니아의 냐루구수(Nyarugusu) 캠프에 있었을 때, 음파움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수많은 콩고 난민들을 만났다.
그는 “실향민으로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다면, 당신은 혼란 속에 빠질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카사바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콩고 사람들과 부룬디에서 온 난민 농부들은 이를 잘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실향민들을 포함하여 총 150여 명의 농부들이 농장을 통해 삶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헥타르 넓이의 이 농장은 3곳의 공동 농장 중 한 곳으로서, 음파움이 지방 정부와 지역 사회의 지원을 받아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운 곳이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에 따르면 450만여 명의 콩고 사람들이 분쟁으로 인해 국내실향민이 되었으며 8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피난을 가야했다. 또한 콩고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50만 명 이상의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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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인 에바리스테 음파움(Evariste Mfaume, 가운데)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있는 루센다(Lusenda) 난민 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UNHCR/John Wessels

음파움은 정부로 하여금 덤불로 덮인 공한지(空閑地)의 구획들을 귀환민들에게 나눠줄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곧 ‘평화의 마을들'이 남키부에 있는 도시들인 바라카(Baraka), 피지(Fizi), 세벨(Sebele) 그리고 음보코(Mboko)에 생겨나는 것으로 이어졌다.
2006년부터 19,000명 이상의 가족들이 삶을 재건하기 위해 이 마을들로 돌아왔다.
음파움은 “이 지역들은 원래 숲이었어요. 현재 개발이 되고 사람들로 가득한 이 지역들을 보고 있으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희망과 힘이 생깁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파움은 난민들과 현지 주민들이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토지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작년에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난민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on Refugees)에도 공유되었다. 특히 여성이 이 일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음파움은 “여성들은 아주 열정적입니다. 한 사람이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에는 희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클라우디네 니안지라(Claudine Nyanzira)는 농업 프로젝트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녀는 2015년에 부룬디로부터 도망을 친 후에 콩고 동부에 위치한 루센다(Lusenda) 난민 캠프에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29세의 클라우디네 니안지라는 “음식과 옷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생활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농업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프로젝트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매우 기뻤어요”라고 말한다.
루센다 난민 캠프는 현재 3만여 명의 부룬디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가량은 18세 미만이다.
임신 7개월 차인 니안지라는 그녀의 가족과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확물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우리는 수확한 카사바를 제분소에 가져갈 거예요. 그곳에서 번 돈으로 우리는 아이들의 학비를 댈 수 있을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음파움이 니안지라나 상가니와 같은 수천 명의 사람들을 돕는 과정에서, 그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울 때 종종 전통 지배층과 마찰을 빚곤 했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여성들에게 기존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심어서,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들을 지배하기 어렵도록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라고 설명한다.
또한 음파움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어 그가 주도하는 운동에 동참하도록 했다. 자크 아순지(Jacques Asunge)도 음파움의 영향을 받아 5년 전에 이 NGO의 일원이 되어 현재는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었다.

아순지는 “에바리스테는 매우 용감하며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의 힘은 남들을 돕고자 하는 그의 소망으로부터 나와요. 저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제가 숨을 거둘 때면, 그때까지 제가 무엇을 했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음파움은 그의 필생의 사업과 남들을 돕는 일을 지속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제 안에 목적의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있는 한, 저는 멈추지 않고 일을 할 것입니다. 제가 숨을 거둘 때면, 그때까지 제가 무엇을 했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난센난민상은 노르웨이 출신의 탐험가이자 인도주의자인 프리됴프 난센(Fridtjof Nanse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프리됴프 난센은 1921년에 국제 연맹의 지명을 받아 초대 난민고등판무관을 역임했다. 난센난민상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난센이 보여준 인내심과 헌신의 가치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