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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로힝야족, 미얀마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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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 로힝야족, 미얀마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다

2022년 9월 6일

‘무국적' 로힝야족, 미얀마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속하다

700,000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도망친 지 5년이 지나고, 무력충돌이 라카인 주(Rakhine State)를 뒤흔든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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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라카인 주(Rakhine State) 시트웨(Sittwe)근처에 있는 국내실향민을 위한 캠프에 딸과 함께 있는 자 베다(Za Beda)의 모습

미얀마 서부에 위치한 라카인 주(Rakhine State)에 살고 있는 로힝야 여성 자 베다(Za Beda, 27세)는 자신의 권리와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에 계속 적응해야만 했다.

2012년에 공동체들 사이에 발생한 무력충돌은 라카인 주를 뒤흔들었다. 당시 17 살로, 이제 막 자신의 가정을 꾸리기 시작했던 그녀는 수만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강제로 집을 떠나야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자 베다와 같은153,000명 이상의 로힝야족들은 여전히 집을 잃은 상태이며, 이들대다수는 캠프에 살고 있다. 추가로 들어온447,000명의 로힝야족들은 이동의 자유를 거의 누릴 수 없는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들은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학교에 다니기도,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2017년에 또 다른 700,000명의 로힝야족이 폭력 사태를피해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 곳곳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다.

난민 캠프로 사용할 수 있는 부지는 제한적이었기에 계속해서 증가하는 난민 인구를 수용하는 것은 많은 곳에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제한적인 위생 시설로 인구 밀도가 높은 난민 캠프에서 살며 가족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자 베다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자 베다는 “우리 가족 8명을 위한 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잘 때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 종종 이웃의 집에 가서 잘때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은 또 다른 어려움이다. 현재셋째를 임신한 자 베다는 의료 서비스를 받으러 가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드는 행정절차는 지역 관리자의 승인과 남성의 동행 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울 뿐더러, 보안 검문소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갈취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난민 캠프 내 자 베다와 같은 산모들을 돕는 조산사인 하시나 베곰(Hassinah Begom)은 "출산 중인 산모에게 합병증이 발생하면 화가 나요”라고 말한다.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녀는 20 년 동안 500 명이 넘는 아이들의 출생을 도우며 캠프의 산모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다.

베곰은 "심각한 경우에는 제가 그들을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 해요. 통금 시간 때문에 오후 6시가 지나면 외출할 수 없어요. 우리가 갈 때, 환자와 동행 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에요. 핸드폰도 가져갈 수 없어요. 그리고 우리는 필요한 약을 더 높은 가격에 사야해요.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분만을 도운 산모들 중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로힝야 난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고 역사적인 아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유엔난민기구는 협력 기관들과 함께 로힝야 난민들, 라카인주 그리고 라카인주 내 다른 실향 커뮤니티에게 가정 용품 제공, 주거 재건, 생계 지원 등의 서비스를 지원해왔다. 이러한 지원은 젠더 기반 폭력과 같은 취약성을 줄이면서 다른 지역 사회 간의 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동의 제한, 시민권 및 필수 서비스에 대한 평등한 접근 거부 등의 정책으로 인해 로힝야 난민들은 소외가 되었고, 인도적 지원에 대한 이들의 의존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라카인주 수도인 시트웨(Sittwe)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사무소 대표인 페데리코 세르살(Federico Sersale)은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이 위기를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권리와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지역 사회 간의 사회적 통합, 캠프의 폐쇄 그리고 로힝야 난민들이 집 또는 그들이 선택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구적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필수적입니다"라고 말했다.

캠프에서 의료 서비스가 거의 또는 전혀 없이 출산한 여성들은 출산 후에도 자녀들에 대한 걱정을 이어간다. 법적 신분을 증명하는 중요한 문서인 출생 증명서는 로힝야족 어린이들에게 거의 발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누구도 출생 증명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슬퍼요."

자 베다의 둘째 아이는 캠프에서 태어나 출생 증명서를 받지 못했다. 그녀의 첫째 아이는 출생 증명서를 받았지만, 2012 년에 집을 잃게 되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분실하고 말았다. 그녀는 "첫째 아이가 증명서를 다시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받을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누구도 출생 증명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슬퍼요. 그 문서가 없이는 그 누구도커서 성공할 수 없어요." 베곰이 말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도움을 주기로 결심한 베곰은 자신이 출생을 도운 모든 아이들의 생년월일을 부지런히 기록했다. "제 소원은 이 기록들이 언젠가 아이들이 신원 확인 문서를 발급 받을 때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베곰은 말했다.

출생 증명서와 같은 기본증명서류 발급을 제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주민등록증과 같은 다른 주요 신원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없으면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신분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그들의 미래를 불안정하게 하고,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며, 결국 그들을 가난과 소외의 굴레에 빠지게 만든다.

세르살 대표는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로힝야 공동체는 더욱 취약해지고 소외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방글라데시에서 안전한 귀환을 원하는 사람들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할겁니다."라고 말했다.

베곰이 출산을 도왔던, 캠프에 사는 16살 청소년 아잠 비비 (Ajam Bibi)는 어머니가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14살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저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해요. 학업을 마칠 기회가 있다면 인도주의 기관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요. 지금은 집안일을 하고 어린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어요." 아잠이 말했다.

인도주의 기관에 의해 초등교육은 난민 캠프 내에서 무상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있지만, 국립 고등학교는 캠프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지역 사회와 분리되어 있다. 학비와 교통비는 재정난에 처한 가정의 금전적인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취업 기회가 부족한 상황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 베다는 자신과 아이들이 마주한 어려움을 생각하면, 그녀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된다. "저는 현재 상황이 너무 슬프고 불행하게 느껴져요. 아이들이 자라고 나서 그들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알 수가 없어요." 자 베다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