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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지혜를 주시는 난민 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손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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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지혜를 주시는 난민 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손자의 편지

2022년 10월 5일

사랑과 지혜를 주시는 난민 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손자의 편지

해당 특별 시리즈는 난민들 덕에 인생을 가꾸어 나간 이들이 난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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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 11살의 아리안에게 케이크를 먹여주고 있다. ⓒ 상그라즈카(Sanghrajka) 가족 제공

아래의 편지는 18세인 아리안 상그라즈카(Aryan Sangdhrajka)가 1972년에 아시아인 거주민들에 대한(상그라즈카 가족은 본래 인도 출신이다) 강제 추방으로 인해 우간다를 떠난 자신의 할머니, 바(Ba)에게 쓴 내용이다.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여겨졌던 그녀는 정부 재정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영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가족 식사에서 바가 나눈 이야기는 아리안이 난민을 옹호하는 청년 주도의 비정부단체인 강제 이주(Forced To Flee)를 창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아리안의 편지는 난민들에게 중요한 영감을 얻은 이들이 실제로 쓴 편지를 게재하는 유엔난민기구 웹사이트 새로운 특별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본 편지는 분량과 내용의 명확성을 위해 편집되었다.

사랑하는 바에게,

운전면허 시험을 합격하고 온 저에게 케리 루스(keri rus)와 바나나 바지야(banana bhajiya)가 추가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녁 식사를 요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세인스버리(Sainsbury)로 장을 보러 가실 때마다 모셔다 드릴 것을 꼭 약속할게요. 그러면 디왈리 (Diwali)선물을 고르기 위해 휴일에 사촌들과 브로드워크(Broadwalk) 쇼핑센터에 수없이 같이 가주셨던 것에 대한 보답이 조금이라도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서는 항상 모든 손주들을 돌보시고, 앞으로도 돌보실 것이기에 저는 평생 감사할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제 삶에 미친 영향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의 힘과 결단력은 저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줍니다. 할머니께서는1972년에 우간다에서 영국으로 온 이후 가장 힘든 시기에도 우리 가족을 챙겨주셨습니다. 당시에 런던 북부 에지웨어(Edgware)에 정착하시고 비좁은 집에 살면서 매일 버스를 타고 신발 공장으로 일하러 가셨죠. 우리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네요.

우리는 여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초와 토대, 그리고 평생 간직할 추억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모두 할머니와 다다(Dada[할아버지]) 덕분이에요.

할머니, 당신은 가족,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정체성이 휘둘리면 안 된다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언어도 알지 못하는 채로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이해해야 했고, 식탁에 음식을 차리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던 상황들을 할머니는 견뎌내셨고, 결국 이곳이 집이 되게 하셨습니다.

진정한 집은 마음이 있는 곳이니까요.

저는 할머니께서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옷으로 가득 찬 여행 가방만 든 채 아들과 함께 원래 살던 집에서 강제로 떠날 때의 기분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어요.

우리 가족의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제 삶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7년에 식탁에 둘러앉아 저의 학교 숙제를 위해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어요. 그것은 제가 오늘 하는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제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무 솔직하고 확신에 차게 이야기해 주신 덕분에 그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닌 힘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제 평생 잊지 못할 저녁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가족들은 매일 전쟁, 분쟁, 박해, 그리고 자연재해로 인해 실향민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다른 나라에서 빠르게 환영받는 행운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을 찾아 위험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여정을 떠납니다. 그들은 할머니처럼 국경을 넘어 안전을 찾기도 하고, 자신의 국가 안에서 국내 실향민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최근에 저는 [그가 소속된 비정부단체] Forced To Flee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공유하고자 연락해온 우크라이나인 가족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그들은--- 어머니와 그녀의 한 살배기 아들(할머니가 캄팔라(Kampala)를 떠나셨을 당시 펍스(Pups[아빠])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습니다)--- 폴란드에 강제로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인 올레나(Olena)는 그들이 가진 것을 몇 분 안에 움켜쥔 채, 대부분의 소지품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집에 두고 온 일을 저에게 말해줬습니다.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그들은 언어를 알지도 못하는 외국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올레나와 이야기하면서 강제 이주 경험은 할머니가 떠나고 난 후인 50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어요. 할머니가 도착하셨을 때 직면했던 많은 장벽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민자와 난민이 항상 친절한 환영만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규범'과 얼마나 다른지 상관없이 우리의 문화와 유산을 잃지 않고 우리 가족을 바로 세워주셨죠.

저는 할머니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어요. 제 열정을 심어준 것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신 것에 대해서도 말이에요. 의지, 자신감, 끈기는 물론, 설탕과 좋은 차 한 잔까지 모두 할머니에게서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저는 내년에 에지웨어를 떠나 대학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튜브를 한 번만 타면 되는 거리로 가니까요. 앞으로 제가 어디로 가든지, 저는 그날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온 대화 이후로 제가 한 모든 일과 앞으로 할 모든 일들이 다 할머니 덕분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사랑을 담아,

아리안 드림

이 편지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강제 실향민이나 무국적자에게 쓰는 편지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난민 친구, 가족 또는 당신에게 영감을 준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데 관심이 있으시면 [email protected] 아이디어를 공유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