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잃은 성소수자(LGBTIQ+)들을 위한 옹호 활동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콜롬비아 출신 성전환 여성
집을 잃은 성소수자(LGBTIQ+)들을 위한 옹호 활동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콜롬비아 출신 성전환 여성
집을 잃은 성소수자(LGBTIQ+)들을 위한 옹호 활동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콜롬비아 출신 성전환 여성
마리아 빅토리아(Maria Victoria)는 국내에서 집을 잃은 콜롬비아 초코(Choco) 주 내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국내에서 집을 잃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는 마리아 빅토리아(Maria Victoria) ⓒ UNHCR/Catalina Betancur Sanchez
36세의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성전환 여성 마리아 빅토리아 팔라치오스(Maria Victoria Palacios)는 콜롬비아 북서부의 아트라토 강(Atrato River) 유역에 위치한 퀴브도(Quibdo) 시를 걸으면서 이웃들로부터 인사와 미소 그리고 따뜻한 축복을 받는다. 그녀의 카리스마와 활동가로서의 역할은 그녀가 지역 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어릴 때부터 리더십 성향이 다분했다. 그녀는 “ 언젠가 ‘인권 옹호자들은 타고난 사람들인 건가, 만들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내 대답은 ‘타고난다'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콜롬비아의 오랜 내부 무력 분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 중 하나인 초코(Choco) 주의 퀴브도에서 자랐고,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이 종종 불법 무장 단체들에 포섭되거나 집과 지역 사회에 갇혀 지내기도 한다. 폭력에 둘러싸인 어린이들은 지속적으로 집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고 우울, 약물 남용, 심지어 자살에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서 15살 때부터 마리아 빅토리아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거나, 외로움, 불안함, 좌절감을 느끼는 취약한 청소년들에게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심리적 응급 처치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성소수자 단체 출신이었다.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 그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던 마리아 빅토리아는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했다. 그녀는 가족들이 자신을 거부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담을 제공하며 가족들에게 본인의 성적 지향에 대해 말할 용기를 얻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삶의 목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초코주 내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집을 잃은 성소수자들을 옹호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다. ⓒ UNHCR/Catalina Betancur Sanchez
성적 지향 때문에 표적이 되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내 실향민이 가장 많은 나라이고, 이 중 680만 명은 아직도 지원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과 토착 지역 공동체는 불균형하게 무력 분쟁의 영향을 받았고 집을 잃을 가능성이 더 크며, 이들 중 성소수자들은 성적 지향 때문에 무장 단체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아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 보통 이들은 자신의 지역 사회 내에서 고립되어 오직 두 가지의 선택지만을 가지고 있다 - 젠더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집을 떠나는 것.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고 항상 평화를 찾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성전환자에게 장소 이동이라는 것은 보통 비난, 차별, 그리고 폭력을 견디는 것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성전환자 상징 깃발을 들고 있는 마리아 빅토리아. ⓒ UNHCR/Catalina Betancur Sanchez
그녀가 2015년에 설립한 단체인 라티도스 초코(Latidos Choco)의 목적은 이런 일들을 방지하고 성소수자 단체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1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퀴브도 내 성전환자들의 고등 교육 보장과 졸업할 때 졸업장에 적힌 이름에 본인의 정체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이끌어냈다. 그녀는 성전환자 단체와 퀴브도 지방 자치 단체 사이의 연락책이 되어 집을 잃은 성전환자들이 모든 공공 정책에 포함되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종종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이뤄냈다. 그녀는 “살면서 이 과정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마리아 빅토리아씨, 나는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을 할 때 그들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다.
안전한 공간을 만들다
마리아 빅토리아에게 그녀가 옹호하는 사람들은 가족과도 같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우리 모두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다”라며 국내 실향민인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성전환 여성 샤록(Sharok)이 동의했다. 그녀는 “그 역할에 있어서 상담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또, 우리가 모두 함께 모여 걱정을 내려놓고 공동체로서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샤록은 2002년 4,0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학살 사건 이후 초코 주의 보야카(Boyaca)에 있는 집을 떠나야만 했다. 샤록은 2018년이 되어서야 마리아 빅토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샤록은 성전환 수술이 절실했지만 의료 시스템은 수술 제공을 거부했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샤록이 수술을 받을 수 있게 긴 법적 다툼을 성공적으로 끝내도록 지원했고, 두 사람은 현재 라티도스 초코를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다.
마리아 빅토리아는 유엔난민기구와 함께 많은 국내 실향민 - 대부분 토착민과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 들이 거주하는 초코 주의 외딴 지역을 방문하여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그녀는 경찰을 포함한 지역 당국이 더욱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했다.
올해 유엔난민기구는 라티도스 초코와 협력하여 이 단체의 활동 및 옹호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내 다른 성소수자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다.
그녀의 다음 프로젝트는? 젠더 기반 폭력과 실향의 피해를 입은 성소수자들을 위한 안전한 공간인 '라 카사 로사'(핑크 하우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전문가와 학제 간 팀의 지원을 받아 이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마리아 빅토리아의 희망은 언젠가는 그 누구도 자기 본연의 모습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녀는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녀는 "우리는 정부에 말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 있고, 살아 있으며,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며 "우리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성적 지향과 젠더 정체성 때문에 박해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