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락 난민촌에서 아시안게임까지: 나고야에서 역사를 쓴 난민 태권도 선수들
아즈락 난민촌에서 아시안게임까지: 나고야에서 역사를 쓴 난민 태권도 선수들
요르단 아즈락(Azraq) 난민촌에서 태권도를 배우며 성장한 탈라 알후나이디(Tala Al-Hunaidi) 선수와 마흐무드 알후세인(Mahmoud Al-Hussein) 선수. 두 선수는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아시아 난민팀의 일원으로 국제무대에 올라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요르단 아즈락 난민촌의 드넓은 사막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체육관. 환한 조명 아래, 하얀 태권도 도복을 입은 두 선수가 경기장에 섰습니다.
그 주인공은 시리아 출신의 탈라 선수와 마흐무드 선수입니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Olympic Council of Asia, OCA)의 깃발 아래 경기에 출전한 두 선수는 제20회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아시아 난민팀(Asian Refugee Team)’의 일원으로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탈라 선수는 여자 49kg 이하급, 마흐무드 선수는 남자 80kg 이하급에 출전해 아시아 각국의 선수들과 겨뤘습니다. 아시아 전역의 응원 속에서 경기를 펼친 두 선수는 모두 치열한 접전 끝에 0 대 2로 패하며 대회를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두 선수가 아시안게임 무대에 남긴 의미는 경기 결과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난민촌의 작은 훈련장에서 시작된 꿈이 국제무대로 이어지기까지, 그 뒤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과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난민촌에서 시작된 꿈, 세계 무대를 향하다
탈라 선수와 마흐무드 선수의 여정은 요르단의 아즈락 난민촌에서 시작됐습니다.
시리아에서 피난해 요르단 난민촌의 제한된 환경 속에서 생활하던 두 선수에게 태권도는 에너지를 쏟고, 더 큰 목표를 꿈꾸며,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두 선수는 태권도박애재단(Taekwondo Humanitarian Foundation, THF)이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요르단올림픽위원회(Jordan Olympic Committee) 및 요르단 당국과 함께 만든 요르단 아즈락 난민촌 태권도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키웠습니다.
훈련장에서 수없이 반복한 발차기와 매일같이 흘린 땀방울은 두 선수를 조금씩 성장시켰습니다. 그렇게 태권도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두 선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됐습니다.
“태권도는 제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어린 소녀였고, 이 운동이 저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몰랐습니다. 지금 저는 더 강해졌고, 자신감도 커졌으며, 인내심도 많아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 탈라 선수
탈라 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러한 마음가짐을 잃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단순히 한 명의 선수로서가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난민의 희망을 함께 품고 아시안게임 무대에 섰다는 사실을 늘 상기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르단과 전 세계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언제나 희망을 품고 있었고,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탈라 선수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무대에 섰지만, 탈라 선수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탈라 선수에게는 언젠가 올림픽에 출전해 더 큰 무대에서 난민팀을 대표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있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해 난민팀을 대표하고 싶습니다. 너무나 특별하고 중요한 순간이 될 것 같아요. 그 꿈을 위해 계속 훈련하고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 탈라 선수
태권도가 바꾼 삶, 또 다른 꿈을 향해
마흐무드 선수에게도 아시안게임 경기장에 선 순간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아온 여정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태권도는 마흐무드 선수에게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됐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태권도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태권도는 그저 하나의 스포츠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태권도는 이제 제 삶의 방식 그 자체가 됐습니다. 태권도는 규율과 인내심, 자신감을 가르쳐 주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지금은 저 자신을 단순한 태권도 선수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스포츠를 통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마흐무드 선수
마흐무드 선수의 다음 꿈은 태권도를 통해 배운 것과 얻은 희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일입니다. 선수로서 올림픽 무대에 서고, 언젠가는 코치이자 멘토로서도 다른 선수들의 성장을 돕는 것이 그의 꿈입니다.
피난과 강제실향이 결코 한 사람의 재능과 가능성까지 앗아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마흐무드 선수는 자신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흐무드 선수는 지금도 세계 곳곳의 난민촌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는 난민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여러분이 처한 환경과 울타리가 여러분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도록 두지 마세요. 저 역시 힘든 순간들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했던 기회의 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계속 훈련하고, 자신을 믿으며, 큰 꿈을 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배경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짓지는 않습니다.”
- 마흐무드 선수
기회가 만들어 낸 변화, 더 큰 가능성으로
탈라 선수와 마흐무드 선수가 아시안게임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두 선수의 끈질긴 노력과 함께, 이들의 꿈을 뒷받침한 여러 주체의 협력과 지원이 있었습니다.
난민을 따뜻하게 맞이한 요르단의 포용적인 환경과, 태권도박애재단의 현장 중심 훈련, 올림픽난민재단(Olympic Refugee Foundation)의 난민 선수단 운영, 그리고 유엔난민기구의 난민 보호 및 법적 지원이 하나로 어우러져 두 선수가 꿈을 펼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탈라와 마흐무드 두 선수의 여정은 우리가 매일 목격하는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난민들은 엄청난 재능과 잠재력,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민들에게 공부하고, 일하고, 훈련하며,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기회가 주어질 때, 그들은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놀라운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 마리아 스타브로풀루, 유엔난민기구 요르단 대표
유엔난민기구는 ‘경기, 그 이상의 의미(More than a Game)’ 전략을 통해 스포츠가 난민 보호와 심리·사회적 웰빙(well-being), 사회적 포용을 증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향을 떠나 피난 생활의 트라우마를 겪는 청년들에게 안전하게 운동하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은 단순한 여가 활동의 장소가 아닙니다. 스포츠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다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20회 아시안게임을 마친 탈라 선수와 마흐무드 선수는 이제 새로운 역사를 쓴 선수로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두 선수는 단순한 대회 참가자를 넘어, 앞으로 더 많은 난민 선수들이 국제무대에 설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개척한 선구자가 됐습니다.
요르단 아즈락 난민촌의 작은 훈련장에서 시작된 꿈이 아시아 최대 스포츠 무대에 닿기까지, 두 선수의 여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난민들이 환영받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동등하게 참여할 기회를 얻을 때 그들이 가진 가능성은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는 난민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