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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병을 피해 우간다로 도망친 콩고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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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병을 피해 우간다로 도망친 콩고 청년들

2012년 12월 25일

강제 징병을 피해 우간다로 도망친 콩고 청년들
20121224 Young Congolese Men Fear Forced Recruitment2.jpg
한 콩고 청년의 친구가 나카반데(Nyakabande) 운송센터에서 청년의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우간다에 도착하는 청년 중 상당수가 강제 징병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말한다.


나카반데 운송센터(NYAKABANDE TRANSIT CENTRE), 우간다, 12월 24일 (유엔난민기구) - 마크*, 필리페*, 조르주*는 모두 젊고, 건강한 남성으로 강제 징병의 이상적인 대상이다. 이것이 이 20대의 청년들이 집을 떠나온 이유다. 이들처럼 수천 명의 청년들이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에서 계속되고 있는 내전에 강제 동원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피난했다.

지난 4월 이후, 북 키부(North Kivu) 지역은 정부군과 M23반군 사이 분쟁의 여파로 극심한 혼란 상태였다. 상황은 이 지역의 전반적인 무법상태와 마이마이 반군(Mai Mai militia)을 포함한 다른 무장세력 간의 충돌로 악화되어 왔다.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충돌 세력의 유용한 자원이 되는 젊은 남성들의 강제 징병이 보편화되었다. 국경을 넘어 우간다 나카반데 운송센터에 도착하는 사람 중 많은 이가 강제 징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쳤다고 말한다. 이들 중에는 10대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유엔난민기구의 우려사항 중 하나다.

M23 반군이 고마(Goma)의 주도로 진군하여 충돌 세력이 11월 20일부터 열흘 간 포획되었던 기간, 언론은 내전으로부터 피신하는 긴 행렬에서 청년과 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어떤 가족은 아들을 미리 안전하게 피신시키거나 숨기기도 했다.

유엔난민기구가 나카반데 운송센터에서 마크를 만났을 때, 그는 국경 너머 북 키부의 루추루(Rutshuru) 지역에 있는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형제와 다른 친척들에 대한 소식을 얻고자 하는 중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2년 전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이 청년은 학교에서 한 반군세력이 남학생들을 납치해 강제로 무력충돌에 가담시킬 계획이라는 소식을 듣고 올해 초 우간다로 도피했다. 그는 “교장선생님이 모두에게 도망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마크는 우간다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도망을 쳤다. 집에 들를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북 키부와 우간다의 키소로(Kisoro) 지역 사이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부나가나(Bunagana)에 도착했다.

마크는 또한 “콩고에 있는 사람들이 우간다로 돈을 가지고 넘어갈 수 없다며 나의 돈(당시 소지했던 미화 10달러)을 빼앗아 갔다.”며, “(부나가나에서 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운송센터까지 걸어갔다.”고 덧붙였다.

필리페 역시 같은 상황에 직면했었다. 그는 신병을 찾는 무장 세력이 마을의 수장들과 접촉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선 모든 청년을 (장부에) 등록해 두고 마을 회의를 소집해 청년 참석자들이 그들 단체에 가담하도록 강요하는 식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필리페는 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국경으로 재빨리 도망쳤다.

조르주 역시 같은 시점에 피신했다. 그는 “마을의 수장과 친분이 있던지라 마을 회의가 징병 목적으로 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다.”며, “그는 내가 이미 장부에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조르주가 집에서 국경까지 가는 데는 일주일이나 걸렸다. 가는 도중 계속해서 숨어야 했고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두려움은 강제징병이었다. 나는 걷고, 숲 속서 자고, 숨어 다니며, 구걸하고 사탕수수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징병된 친구들의 신변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나카반데의 유엔난민기구 직원은 최근 몇 달 동안 많은 청년들이 센터에 도착하고 있다 말하며 그 원인을 분쟁의 최전선으로 보내질 수 있다는 (청년들의) 두려움에서 찾았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만 나카반데에 매일 평균 115명의 사람들이 도착했고 그들 중 7-8명은 강제 징병을 피해 도망쳤다고 말했다.

지난 11월부터 숫자가 줄어들기는 했으나, 고마로 돌아가는 정부군과 인근의 M23 세력 사이의 계속되는 교착상태가 청년 징병을 다시금 확대시킬 수도 있다. 양측은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Kampala)에서 평화회담을 진행 중이지만 그 결과가 불확실해 북 키부의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나카반데에서 유엔난민기구와 대화를 나눈 청년들은 유엔난민기구 법무팀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운송센터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그들의 가족과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떤 청년들은 가족이 와서 함께 할 수 있길 희망했다.

자신의 형제들이 우간다로 넘어와 나카반데 운송센터에서 북쪽으로 약 35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르왐완자(Rwamwanja) 정착지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마크는 자신의 “남자형제와 재회하고 싶다.”며, “그는 마지막 남은 나의 유일한 형제”라고 말했다.

마크, 필리페, 조르주 그리고 다른 청년들은 모두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 지난 2003년 체결된 국가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험지역인 콩고민주공화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학업을 계속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희망한다.

필리페는 “나의 꿈은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고, 마크 역시 유엔난민기구에게 “나에게 기회가 있다면 (르왐완자) 정착지의 학교에 가서 학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 신상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음.

셀린 슈미트, 나카반데 운송센터, 우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