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단 난민 150만명 기록…우간다, 수 천 명에게 쉼터 제공해
남수단 난민 150만명 기록…우간다, 수 천 명에게 쉼터 제공해
남수단 난민 150만명 기록…우간다, 수 천 명에게 쉼터 제공해
폭력 사태가 급증함에 따라 우간다에 머무르는 남수단 난민 수가 반 년만에 3배 넘게 증가해 69만8천 명에 이르렀다.

시다 하와와 그녀의 아이들은 남수단의 분쟁을 피해 도망쳤다. 이틀을 이동한 끝에 우간다의 안전한 곳에 이르렀다.ⓒ UNHCR/Michele Sibiloni
시다 하와가 지평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타는 듯한 태양이 그녀가 앉아 있는 나무의 가지 사이로 내리쬔다. 그녀의 여섯 아이들은 그녀가 18개월의 아산티에게 젖을 먹이는 동안 그녀 가까이 붙어 앉아 있다.
“저는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며칠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긴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한다. “저에겐 충분한 식량이 없었어요. 생 카사바가 있었죠. 이걸 아이들에게 먹여야 했어요. 그들이 지치면 저희는 쉬고 제가 그들에게 물을 주었어요.”
시다(30)는 최근 우간다 북쪽의 작고 먼지가 자욱하며 남수단과 국경을 맞댄 곳들 중 한 곳과 가까운 마을인 쿠루바에 도착했다.
그녀는 정부와 반대 세력 간의 평화협정이 깨지고 치열한 전투가 재개된 작년 7월 이래 우간다로 밀려들어온 수 천명의 난민 중 한 명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오늘 2013년 12월 내전이 발생한 이래로1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남수단을 떠나 안전한 곳을 찾도록 내몰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남수단은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난민 위기이자, 아프리카의 가장 큰 난민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적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만성적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극도로 불안한 안전 상황은 난민들이 피난길을 떠나도록 강요하고 있으나, 임시 수용소 및 난민 수용소의 규모가 작아 늘어나는 유입인구를 수용하기에는 한계에 이르고 있다.
“저는 국경까지 이틀 동안 걸었지만 큰길을 이용하지 않았어요.”
2017년 1월 이래로, 5만2천명이 넘는 난민이 우간다에 수용되었다. 대부분 난민들은 시다 가족이 이용했던 부시아와 같은 입국 지점을 통해 국경을 넘는다. 많은 이들이 주요 접경 지역까지 이르는 경로에 주둔하고 있는 무장 단체들을 피해 비공식 접경을 이용한다.
직통 경로를 따라 주둔하고 있는 무장 세력들의 공격이 두려워 수천명의 사람들이 콩고민주공화국 남부를 거쳐 우간다 동부로 향하는 우회로를 통해 걸어서 남수단을 떠난다. 어떤 이들은 안전한 지역에 겨우 도달하기까지 한 달 넘게 걷기도 한다.
남수단 난민들 중 대부분이 우간다에 머물고 있으며, 현재까지 그 수가 총 69만8천 명에 이르렀다. 6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우간다에 수용된 남수단 난민의 수가 3배 넘게 증가해 우간다는 남수단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주변국이 되었다.
에티오피아는 34만2천명을 수용하고 있으며, 수단이 30만5천명, 케냐가 8만9천명, 콩고민주공화국이 6만8천명,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4천9백명을 수용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의 대변인 윌리엄 스핀들러는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하며 덧붙였다. “60퍼센트가 넘는 난민은 아이들이며, 그 중 많은 이들이 우려할 만한 수준의 영양실조 상태로 도착합니다. 최근 도착한 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남수단 내의 사람들은 치열한 전투, 납치, 강간, 무장 단체에 대한 두려움과 생명 위협을 비롯하여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남수단 남서부 예이 지방의 모고에 있는 시다의 집은 분쟁이 그 곳으로 번지기 전까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곳으로, 그녀는 집을 떠나 3일 간의 여정을 견뎌 국경에 이르렀다.
“저는 국경까지 이틀 동안 걸었지만, 큰길은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수풀 사이로 걸었어요. 왜냐하면 군인들을 만나면 그들이 죽일 수도 있거든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저는 엿새 동안 제 여섯 아이들과함께 수풀 사이에 숨어있었습니다.”
사라 아파이는2016년 중반 이후로 콩고민주공화국을 거쳐 우간다에 도착한 6천명의 난민들 중 한 명이다. 큰길을 따라 있는 체크포인트와 강도들을 피해 더 많은 난민들이 이처럼 더 긴 경로를 택하도록 내몰리고 있으며, 우간다까지 며칠 동안 걸어야 하는 데다 적은 소지품들과 식량, 물과 기타 생필품을 이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제 남편은 전쟁이 시작된 후 1년 전 납치 당했어요. 저는 민주공화국에 가려고 엿새 동안 저의 여섯 아이들과 함께 수풀 사이에 숨어있었습니다”라고 사라가 말했다. 그녀가 콩고민주공화국의 보콜로에서 우간다까지 가는데 다시 이틀이 걸렸다. “수풀 안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저는 야생 동물들 때문에 걱정되었지만 반군들에게 공격당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죠.”
시다나 사라와 같은 여성 및 아동들은 내전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우간다로 오는 난민의 86퍼센트를 이룹니다.
“2천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매일 우간다에 옵니다. 거대하고 끊임 없는 긴급상황이에요.” 유엔난민기구와 협력하는 시니어 긴급 상황 코디네이터나시르 페르난데스가 말했다. “저희의 최우선 순위는 생명을 구하고 새로 도착한 이들의 기초 생필품이 가능한 빨리 충족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시다 하와가 난민등록과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 아이와 함께 쿠루바 임시 수용소에서 줄을 서고 있다.ⓒ UNHCR/Michele Sibiloni
늘어나는 유입 인구에 대응하기 위하여 새로 도착한 이들은 도착 즉시 정부에 등록하기 위하여 쿠루바의 임시 등록센터로 안내된다. 팔로리니야 정착촌으로 옮겨지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수면 매트, 담요와 위생 용품을 지급 받으며 아이들은 홍역과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맞는다.
팔로리니야 정착촌은 비디비디 정착촌이 가득 찬 이후 2016년 12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2016년 8월에 개소한 비디비디 정착촌은 몇 달 간 가장 큰 난민 수용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팔로리니야가 이미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하자, 새 정착촌을 위한 준비가 이미 진행 중이다.
우간다는 진보적 난민 및 비호 정책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난민 자격이 주어지고 난 후, 난민들에게는 현지 지역사회와 연계된 마을에 작은 땅이 주어진다.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난민과 현지 지역사회가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선구적 접근 방식이다.
국경 수용에서 정착촌 배정까지그 과정은 평균 3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난민들에게는 일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국가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 등 다양한 권리와 자유가 주어진다.
“드디어 안전해져 기쁩니다.”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우간다의 남수단 난민 수가 세 배 넘게 증가했다. 고국을 떠나 인근 국가로 떠난 남수단 난민 백십만 명 중 절반 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간다 정부가 보여준 긴급 상황에 대응하는 노력은 엄청난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위기는 우간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사회가 현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난민들에게 안전과 존엄성이 갖춰진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있어서 우간다를 도와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라고 페르난데스가 말했다.
2016년에 남수단 사태 대응을 위한 인도적 호소에 응하여 모인 자금은 필요한 자금의 75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더 많은 기여가 없다면, 중요한 지원과 주요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도적 대응 능력이 심각하게 타격 입을 수 있다.
시다는 우간다에서 평화와 재기 기회를 찾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마침내 안전해졌다는 것이 기쁩니다. 저는 이 고통이 끝나길 바랬고, 지금 그 끝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