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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헝가리 남성으로 자란 아프가니스탄난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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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헝가리 남성으로 자란 아프가니스탄난민 소년

2015년 1월 30일

당당한 헝가리 남성으로 자란 아프가니스탄난민 소년

다뤼시(Dariush)는 15세가 되던 해 홀로 헝가리에 도착했다. 이 어린 하자라족(Hazara)족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살해된 후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오늘날 그는 유창한 헝가리어를 구사하며, 관광 산업에 종사하길 희망하고 있다.

부다페스트, 헝가리, 12월 31일 (유엔난민기구)- 멋진 검은색 외투 차림으로 부다페스트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다뤼시 레자이(Dariush Rezai)는 카페의 여느 20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들처럼 다뤼시 역시 유창한 헝가리어를 구사하고 엑스박스(X-Box)와 기타연주를 즐기며 대학에 진학하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그의 아시아적 특색은 다뤼시가 헝가리인이 아님을 알려주는 첫 번째 단서이다. 그리고 조금 더 듣다 보면 다뤼시의 삶이 부다페스트에 사는 대부분의 젊은이나 많은 젊은 유럽인의 삶과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뤼시는 “이제 내 이야기를 하겠지만 오늘 이후 더 이상 지난 날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미래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를 잊고 싶은 다뤼시의 바람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고작 15세에 헝가리에 홀로 도착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 아동 난민의 어려움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2013년, 전 세계 실향민 중 절반이 18세 미만이었다. 국제적으로 보호자 미동반인25,300명의 아동이 비호를 신청했으며, 이는 최근 전체 비호신청의 약 4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매년 헝가리에 약 200명의 보호자 없는 아동이 홀로 비호를 신청한다. 이들은 홀로 도피하며 종종 교전 지대로부터 이동한다. 일부는 자의로 탈출하고 가족이 아동을 국외로 탈출 시키는 경우도 있다.

다뤼시의 긴 여정은 전형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 가즈니(Ghazni) 지방 토착민인 다뤼시는 무장단체가 하자라족인 그의 아버지를 살해할 당시 12세였다. 아버지와 같은 운명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뤼시와 그의 어머니는 밀수업자의 도움으로 이란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테헤란(Tehran)에 정착했지만, 주어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다뤼시는 테헤란에 남는다면 어머니와 신발 공장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 동안 일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장래가 되리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어머니와 그는 다른 지역에서의 삶만이 다뤼시에게 제대로 된 장래를 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밀수업자 집단에 다시 한 번 지불할 돈이 마련되자 다뤼시는 그곳을 떠났다. 그의 목적지는 유럽이면 어느 곳이든 상관없었지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다뤼시는 자신의 선택을 재고하곤 했다. 그는 “떠난 것을 매일 후회하곤 했다”며, “운명을 전적으로 밀수업자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하든 자유였다”고 말했다.

경찰이 헝가리 국경을 넘으려 하는 다뤼시를 발견했을 때 육개월 간의 여정이 마침내 끝났다. 그는 비치케(Bicske)의 난민 센터로 보내졌으며, 그곳에서 그의 진정한 여행이 시작됐다.

헝가리 정부가 그에게 난민 지위와 유사한 법률 보호를 승인했고 다뤼시는 포트(Fot) 지방의 한 기관에 정착했다. 이 기관은 보호자가 없는 아동에세 숙소와 교육을 제공하는 두 개의 전문 기관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다뤼시는 외로움과 싸웠으며, 헝가리어를 배우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24세가 될 때까지 제공되는 국가 재정지원을 통해 그는 독립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18시에서 24세 사이의 난민이 이러한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엔난민기구 보호담당관 카팅카 허스자(Katinka Huszar)는 “아동일 당시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젊은이들은 이 지원에 대상이 아니”라며, 이는 “헝가리 수용체계의 커다란 결점”이라고 지적했다.

허스자에 의하면 비호신청자 대우에 있어 18세 문턱은 많은 젊은이들이 법적으로는 성인지만 아직 취약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마법의 갈림길”이다.

헝가리의 또 다른 문제는 수용체계의 주요 부분을 민간단체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즈자는 “정신치료, 법률 지원, 교육 등과 같은 많은 주요 업무가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는 지역 비정부 기구(NGO)와 재단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며, “이러한 공백은 현 시스템의 상태를 지속 불가능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다뤼시는 난민과 비호신청자를 위한 통역을 제공하고 이들에게 부다페스트 가이드를 해주며 관광쪽 직업을 가지고 싶은 장래희망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또한 난민에 대한 교육 세미나에 참석하고, 때로 그의 소중한 기타로 모교인 포트 센터에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요즘 다뤼시는 그가 난민으로 헝가리에 계속해서 체류할 수 있게 될 것인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에도 다뤼시는 좌절하지 않는다. “나는 포기한 적이 없다”며, 그는 “지금까지 항상 최선을 다했으며, 지금 이 순간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베로니카 페이트(Veronika Fajth)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