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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라, 아니면 바다에서의 기억이 가슴을 찢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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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하라, 아니면 바다에서의 기억이 가슴을 찢어놓을 것이다“

2016년 9월 24일

“대화를 하라, 아니면 바다에서의 기억이 가슴을 찢어놓을 것이다“
2016년 난센난민상을 수상한 헬레닉 구호대 자원봉사자들이 돌아본 잊지 못 할 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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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레스보스의 헬레닉 구호대자원봉사자 안티고니 피페라키(좌)와 파나요티스 콘스탄타라스(우) ⓒ 유엔난민기구 / 고든 웰터스

그리스 레스보스(Lesvos)- 레스보스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파나요티스 콘스탄타라스와 안티고니 피페라키는 헬레닉 구호대 (Hellenic Rescue Team, HRT) 봉사자로서의 임무로부터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잊지 못할 한 해를 되돌아본다.

“우리는 5명에서 10명 정도 타고 있는 승선한 상황에서 연습을 한다”고 안티고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런데 50명이 타고 있는 배를 보게 되면 속으로 ‘이제 어떻게 하지?'하고 묻게 된다. 이럴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둘은 2015년 난민 사태가 절정에 달해 레스보스 섬에만 하루에 1만 명 이상이 도착할 당시 HRT 구호팀에서 활동했다.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일 년 내내 비상 태세를 유지하며 바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 주어진 임무 이상을 해냈다. 파나요티스와 안티고니를 비롯한 많은 봉사자들이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와중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정된 자원으로 구조활동을 벌였고, 이른 아침부터 해양 경비대의 전화를 받고 출동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3월 초부터 도착하는 인원 수가 급증했다.”

파나요티스는 레스보스에서 HRT 잠수부로 활동하고 있는 농부이다. 그는 2015년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던 시기를 떠올렸다.

“3월 초부터 도착 인원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해양 경비대가 제공한 구조선이 열 척 있었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오전 6시부터 10시 사이에 난민으로 가득 찬 배가 서른 다섯에서 마흔 척 가량 도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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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보스 헬레닉 구호대자원봉사자 파나요티스 콘스탄타라스. ⓒ 유엔난민기구 / 고든 웰터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가끔씩 위험하게 설계된 큰 배들이 왔다”며 그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낡은 목재로 만들어진 배에 200여 명이 타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2015년에는 층마다 사람이 타고 있는 3층짜리 목조 선박에 사고가 발생했는데, 배가 전복되면서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깔려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우리는 시신들을 물에서 건져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이제 감정이 무뎌졌다. 피해자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노력한다.”

약사회에서 근무하며 레스보스 HRT 구호팀을 이끄는 안티고니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바다에서 끔찍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했다. “2015년을 떠올릴 때마다 시신들이 생각난다”고 그녀는 말한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남편은 11월 어느 아기의 시신을 발견한 뒤, 매일 9개월 된 딸을 네 시간씩 끌어안고 있곤 했다. 아이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시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HRT 자원봉사자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 힘을 얻는다. “대화를 하라”고 파나요티스는 조언한다. “아니면 바다에서의 기억이 가슴을 찢어놓을 것이다.”

파나요티스와 안티고니를 비롯한 수천 명의 그리스 자원봉사자들은 2015년 한 해 동안 어떠한 인정이나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희망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그 중 다수는 동료 인간에 대한 의무감에 이끌렸고, 그리스어로 이방인에 대한 환대를 뜻하는 “필로제니아(philoxenia)”를 실천했다.

“나는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병을 앓은 자매가 있었다”고 안티고니는 말했다. “그녀는 28세에 죽었다. 부모님께서 항상 내 자매를 돌봐주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본받아 나 역시 꼭 그 병을 앓지 않더라도 돈, 식량 등 어떠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돕고 싶었다. 내 자매는 더이상 내 삶에 없지만, 여기에 오는 난민들을 대신 도와줄 수 있다. 내 개인적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안티고니는 정치 지도자들이 언젠가 그녀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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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보스 헬레닉 구호대 팀장 안티고니 피페라키. ⓒ 유엔난민기구 / 고든 웰터스

“모든 나라들이 시리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내가 발 디딘 곳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타국에서 벌어진 상황은 그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지금은 시리아 상황이지만 내일은 영국에서 벌어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현재로써는 그녀와 동료 HRT 자원봉사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팀원들을 보며 ‘내가 지금 그만둔다면 새로 온 사람들에겐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 없다. 그들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1년 더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언젠가 그리스 전체가 더 나아질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