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에게 버림받은 콩고 출신 동성애자에게 새 고향 찾아준 유엔난민기구
모친에게 버림받은 콩고 출신 동성애자에게 새 고향 찾아준 유엔난민기구
모친에게 버림받은 콩고 출신 동성애자에게
새 고향 찾아준 유엔난민기구

주니어 마예마(Junior Mayema)가 공항으로 가기 위해 케이프타운의 집을 나서고 있다.
그는 그의 성적 성향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 미국에 재정착했다
케이프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 12월 16일 (유엔난민기구) - 주니어 마예마(Junior Mayema)는 고향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성장하는 동안 그의 성적 성향을 숨겼지만,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모친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목사인 나의 모친은 나를 죽이려 했다,” 올해 27살로 성소수자(LGBTI) 커뮤니티가 잘 자리 잡은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케이프타운을 떠나는 마예마가 말했다. “무척 심각한 상황이었다. 상상해 보라. 아홉 달이나 뱃속에 나를 품었던 여인이 나를 죽일수도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마예마는 모친이 그를 악마라고 비난하고 가족이 그를 묶고 고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가족 대부분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죽이고 싶어했다,”며, “그들은 나의 삶의 그들의 수치라고 생각했다. 난 내 가족 곁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꼈고 버림받은 기분이었다”고 덧붙였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위협과 반감을 마주한 그는 헌법과 국내법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비호 신청을 하기로 결심했다.
킨샤사 지방 중산층 가족의 오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난 그는 콩코민주공화국에서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훨씬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는 그가 아이였을 때 이혼했고, 마예마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부친과 함께 살았다.
마예마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규범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킨샤사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가족, 특히 모친은 그에게 여자친구에 대해 물었다. 마예마는 “가족이 의혹을 품고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의 삶은 영원히 바뀌었다.
그의 성향에 대해 편협한 가족에게 위협 당하고 사회에서 배척당한 마예마는 2010년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표면상으로는 사촌 방문을 위한 여행이었으나 도착 후 그는 비호신청을 했고 조언을 구하기 위해 유엔난민기구에 연락했다.
난민신청 인터뷰 단계에서부터 남아프리카에 대한 마예마의 환상은 깨져버렸다. 그는 “사무관이 내게 ‘만약 내가 동성애자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겠냐”고 물었다”며, “사무관이 비호신청을 불허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유엔난민기구에 등록했다는 말을 듣자 동료와의 대화 후 나의 비호신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개방적이고 개화된 사회를 희망하던 마예마는 곧 킨샤사에서 그를 힘들게 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차별과 대면했다. 거처를 마련했으나, 동성애 혐오증이 있는 임대주로부터 그는 정기적인 조롱을 당했다. 마예마는 “임대주가 나의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소리를 질렀고 여자친구들의 방문만 허락했다. 그는 다른 임차인들은 다르게 대우했고 때로 나를 구타하기도 했다”고 유엔난민기구에 말했다.
지난 7월, 또 한 번의 모욕을 당한 후 이 젊은 콩고인은 임대인에 대한 항의를 제기하기 위해 경찰서에 갔다. 하지만 마예마는 그가 경찰서 뒤로 끌려가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아직 신을 믿는다. 신이 없다면 나는 그날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마예마는 지역 인권 기구의 도움을 받아 그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 경찰관들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유엔난민기구 직원은 폭행 소식을 들은 직후 마예마의 재정착을 진행했다. 마예마의 케이스를 담당한 키지토스 오키사이(Kizitos Okisai) 유엔난민기구 재정착 사무관은 마예마의 재정착이 받아들여지는데 불과 4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오키사이는 “이는 비호국에서 박해를 받아 다른 곳의 보호가 필요한 성소수자 난민을 위해 국제 사회가 어떻게 나설 수 있으며 도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유엔난민기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난민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마예마는 그를 수용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한다. 그는 “인권 변호사라는 나의 꿈을 이루고 싶다”며, “이것은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만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약 65,000명의 난민과 230,000명 이상의 비호신청자를 수용하고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그레이트 레이크(Great Lakes) 지역과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에서 왔다. 성소수자 난민의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티나 겔리(Tina Ghelli)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