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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으로 인해 두 남자가 크로아티아에서의 평범한 삶을 박탈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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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국적으로 인해 두 남자가 크로아티아에서의 평범한 삶을 박탈 당하다

2019년 9월 18일

무국적으로 인해 두 남자가 크로아티아에서의 평범한 삶을 박탈 당하다
구 유고슬라비아의 두 시민이 일련의 절차적인 불상사를 겪은 후 크로아티아에서 무국적자가 되었다.


베드리 호티(Bedri Hoti)는 무국적자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몇 년 동안 그는 가난에 허덕이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살고 있었다. 그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국가가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보로 토폴리치(Boro Topolic)는 수십 년 동안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는 갑자기 무국적자가 되어있었다.
크로아티아에는 거의 3,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무국적자이거나 혹은 무국적자가 될 위험에 처해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집시이다.
베드리와 보로는 둘 다 집시가 아니다. 둘은 한때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었던 다른 지역에서 크로아티아로 이동해왔다. 두 사람 모두 행정 결정으로 인해 아픔을 겪었다.
유엔난민기구는 무국적을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무국적으로 인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은 당연하게 누리는 권리들을 박탈당한다.
무국적자들은 학교에 가는 것, 병원에 가는 것, 일을 하는 것,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 집을 사는 것, 그리고 심지어 결혼을 하는 것조차도 종종 허용되지 않는다.
2024년까지 무국적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실시하고 있는 #Ibelong 캠페인의 4주년을 맞이하여, 유엔난민기구는 캠페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각 국가들이 더욱 신속하고 확고한 행동을 취할 것을 촉구한다.
유엔난민기구 최고 대표인 필리포 그란디(Filippo Grandi)는 “오늘 저는 전 세계의 정치인들, 정부들, 그리고 입법자들이 지금 당장 결단력 있는 행동을 취하고, 이 행동을 지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전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무국적을 2024년까지 없앨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베드리에게 있어서 각종 증명 서류가 없다는 것은 살아있지 못한 것과 다름없었다. 유럽 인권 재판소가 베드리를 지지하고 나서야 크로아티아는 문제를 바로잡기 시작했다. 베드리는 이제서야 비로소 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을 바탕으로 발급된 여행증명서를 받았다. 이 증명서를 통해 베드리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의 파트너 NGO인 시삭 시민권 프로젝트(Civil Rights Project Sisak)는 베드리와 보로에게 무료 법률상담 및 법률지원을 제공했다.


“제 소유의 자동차가 있었고, 제가 살 아파트를 빌렸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생활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56세의 베드리는 여전히 수도인 자그레브(Zagreb)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노브스카(Novska)라는 마을에 있는 버려진 집의 허름한 방에서 지내고 있다. 이웃들이 음식을 주고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며, 샤워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년 동안 베드리는 일을 하거나 사회적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베드리는 “주변 사람들의 친절함 덕분에 살 수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코소보(Kosovo)에서 알바니아(Albanian) 난민으로 태어난 베드리는17살 때 크로아티아로 이사를 갔다.
베드리는 “저는 일을 하기 위해 크로아티아로 왔습니다. 저는 노브스카에서 웨이터직을 제의 받았고, 그 다음에는 정비공일을 했습니다. 제 소유의 자동차가 있었고 제가 살 아파트를 빌렸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라고 말한다.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이 일어났던 1991년에서 1995년 사이에 베드리는 노브스카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크로아티아 군대의 차량을 정비하는 숙련공으로 징집되었다. 하지만 전쟁 도중 베드리가 신청한 크로아티아 시민권은 그가 알바니아인이라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그는 “저는 태어나서 알바니아는 가본 적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베드리는 외국 국적자들에게 발급되는 크로아티아 신분증을 발급 받았다.
베드리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사이, 63세의 보로 토폴리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보로는 40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며 세금을 납부했고, 단 한 번도 곤경에 처한 적이 없다.
보로는 1975년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에서 크로아티아로 왔다. 그는 리예카(Rijeka)와 스플리트(Split)의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했으며, 자그레브에서는 증기 보일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현재 그는 택시 운전사이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제게는 엄청난 모욕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로가 2014년 5월에 그가 빌려서 살고 있던 자그레브의 한 동네에 위치한 아파트를 구입하려고 하자, 악몽과도 같은 일들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구입을 하기 위해서는 크로아티아 시민권이 필요했다. 보로는 크로아티아 영주권이 있었으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보로는 만약 그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시민권을 포기한다면 크로아티아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시민권을 포기했으나 크로아티아 당국은 그를 거절하고 무국적자로 내몰았다.
보로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제게는 굉장한 모욕이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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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리 호티(Bedri Hoti)와 그의 반려견인 눅스(Nux)가 크로아티아 노브스카(Novska)에 있는 그의 집 바깥에 있다. 일생의 대부분을 크로아티아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크로아티아에 살 수 있는 베드리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 UNHCR/Zsolt Balla


그는 자신이 무국적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출산 예정이었던 딸을 보러 세르비아로 여행을 가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찾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제 손자의 출산을 위해 세르비아에 가고 싶었어요”라고 말한다.
보로가 크로아티아 시민권을 신청했을 때, 그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시민권을 포기한다면 크로아티아인으로 인정이 될 거라는 공식적인 보증을 받았다.
그는 정보 장교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을 방문할 것을 요청 받았다. 보로는 “정보 장교는 제가 이미 수백 번도 더 대답했던 질문들을 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왜 크로아티아에 있냐는 것처럼 말이예요. 그리고 제 혼인 상태에 대해 넌지시 말을 했어요. 한 달 뒤, 저는 크로아티아 시민권을 거절 당했어요”라고 말한다.
크로아티아 내무부로부터 온 공문에는 “크로아티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보로의 신청을 거절한다고 쓰여있었다.


“저처럼 늙은 나이의 사람에게 무슨 가망이 있겠어요?”


보로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시민권을 되찾기에는 너무 늦었다. 대신 그는 무국적자들을 위한 크로아티아 여권을 발급 받았다. 세르비아로 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취득해야 하지만, 이 여권이 있으면 보로는 여행을 할 수 있다.
또한 보로는 개인 분담금을 성실히 납부했으므로 내년에 은퇴를 하게 되면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저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라고 말한다.
25년 가까이 일을 하거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베드리 호티의 경우는 더 안 좋은 상황이다. 그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가끔 자동차 수리를 하며 약간의 돈을 버는 것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여행은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결혼 또한 언감생심이었다.
현재 베드리는 1954년 무국적자 지위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무국적자로 인정이 되었으며 여행증명서를 받았다. 8년 안에, 그는 크로아티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암흑과도 같은 터널의 끝에는 한 줄기 빛이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시간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개인 분담금을 내지 않았으므로 베드리는 연금을 받기 힘들 것이며 기껏해야 최소한의 사회 복지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베드리는 한숨을 쉬며 “저는 56세입니다. 저처럼 늙은 나이의 사람에게 무슨 가망이 있겠어요?”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