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美)‘ 콩고 난민 여성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다
'미(美)‘ 콩고 난민 여성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다
'미(美)‘ 콩고 난민 여성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다

로세트 와벵가(흰 바지 차림)가 캄플라의 한 빈민가에서 소녀들에게 미용에 관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미용실에 오는 손님은 많지 않지만, 소녀들은 (마을내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로세타에게 영감을 받고 있으며 그녀로부터 창업에 관해 배우는데 열성이다.
캄팔라, 우간다, 4월 15일 (유엔난민기구) - 비록 고객이 많지는 않지만 캄팔라(Kampala) 키세니(Kisenyi) 빈민가에 위치한 소박한 이름의 미용실은 난민 로제트 와벵가 (Rosette Wabenga)에게 현실로 이루어진 꿈이다.
“이 가게를 소유할 수 있어 나는 매우 축복받은 여성”이라고 와벵가는 말한다. “어떤 말로도 내가 유엔난민기구(UNHCR)에 느끼는 고마움을 표현할 수는 없다. 그들은 나의 꿈이 실현되도록 도와주었다.” 와벵가는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을 받아 얻은 중소기업대출을 언급하며 덧붙였다.
그녀는 아주 작은 성공이라도 얻기 위해 참혹한 여정을 겪어왔다. “많은 충격과 슬픔을 경험하게 한 괴로운 여정”이었다고 세 명의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는 와벵가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와벵가가 정치운동가인 남편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콩고민주공화국 동쪽 고마(Goma)에 위치한 그들의 집에 침입한 무장괴한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남편은 2006년 감옥에 수감되었고 와벵가는 이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나 자녀와 함께 집에서 도망쳐야 했다” 7년 전을 회상하며 와벵가는 말했다. 그녀는 다행히 트럭운전사를 만났고, 그는 가족을 우간다로 데려다주었다. 가족은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외곽에 위치한 교회에 내려졌다.
와벵가는 “이 새로운 도시에서 어떻게 할 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만이 내가 시작한 이 새로운 여정에서 날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회의 한 성도가 그녀가 난민신청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이제 37살이 된 와벵가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지만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히 벌지 못했다. 와벵가는 “고향에서 미용사였는데 우간다에서는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다”며,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꿈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녀는 유엔난민기구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작년 한 해에만 19,000명이 넘는 난민에게 각종 상담, 의료, 법적 지원을 제공한 인터에이드(Interaid)에 도움을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망명 신청에서부터 신체적 장애, 교육 그리고 생계지원 등 다양한 도움을 필요로 했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와벵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인터에이드 사무실에 갔다. “나는 심지어 그곳의 직원, 경비 그리고 다른 난민들과 친구가 되었다” 와벵가는 말했다. “ (미용실을 열겠다는) 나의 목표를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많은 것을 감내했음에도 캄팔라는 그녀가 기대했던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2010년 와벵가는 3명의 남성에게 차로 납치를 당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캄팔라에 있는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로부터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것을 전해들은 것 뿐이다. 가해자는 잡지 못했다.
인터에이드의 상담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삶을 되돌려주었다”고 와벵가는 회상했다.
마침내 그녀는 미화 320달러의 창업대출금을 따냈고 미용실을 열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머리를 땋아줄 뿐 아니라 인터에이드와 유엔난민기구를 도와 다른 미용사들을 교육하며 돈을 벌고 있다. 다시금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은 물론 그녀의 미용실은 다른 혜택도 가져다 주었다.
와벵가는 자신이 “이웃과 지역사회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은 내 돈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고 있고 나를 지원해준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피 나무게니(Sophie Namugenyi), 캄팔라, 우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