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와 헤체고비나에 마련도니 추억이 담긴 새로운 보금자리
보스니아와 헤체고비나에 마련도니 추억이 담긴 새로운 보금자리
보스니아와 헤체고비나에 마련된추억이 담긴 새로운 보금자리

비세르카부카시노비치(안경을쓰고서있는사람)씨가보스니아헤체고비나고라즈드에서다른귀환여성들을대상으로재봉수업을진행하고있다.
고라즈드, 보스니아 헤체고비나, 4월 14일 (유엔난민기구)-비세르카 부카시노비치(Biserka Vukasinovic)는 귀환민과 국내실향민으로 두 차례의 난민 생활을 겪으면서 생긴 강한 귀소본능이 있다. 매번 그녀의 삶의 터전을 잃을 때마다, 그녀는 돌아가는 법을 찾아낸다.
처음 그녀가 보스니아 헤체고비나를 떠나야만 한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중, 그녀가 어린 소녀였을 때이다. “부모님은 소가 끄는 수레를 준비하셔서 짐을 꾸리셨다. 나와 두 자매와 함께 같이 떠났다. 우리는 창문과 문이 없는 집 한 채를 발견했고 그곳을 피난처로 사용했다. 한 번은, 독일군병사가 집으로 찾아왔는데, 저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었다. 독일에 있는 자기 딸이 떠올렸던 것 같다.”
그들은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비세르카는 보스니아 헤체고비나 동부 지역에 위치한 도시인 고라즈드(Gorazde)에서 자랐고, 결혼하여, 남편인 아코 부카시노비치(Aco Vukasinovic)와 그곳에서 30년 이상 살았다. 남편은 1991년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전쟁이 일어났을때 그녀는 고국을 떠나 세르비아로 떠나온 24000명의 난민들 중 한 명이 되었다.
비세르카는 심각한 폐렴과 경제적 궁핍을 겪었다. “지역 적십자사는 나를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보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여러 방법을 도모해야 했다. 나는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불가리아로 가서, 세르비아에서 다시 팔 만한 물품들을 구입하곤 했다.”
분쟁은 1995년 끝났고, 그녀는 고라즈드로 돌아가 무너진 집을 다시 짓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세르비아에 있을 동안, 그녀는 재건축을 위한 기부금을 받고자 노력했으나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결국, 향수병으로 인해 그녀는 자원해서 난민 지위를 포기하고 2009년 고라즈드로 돌아갔다. 한 때는 그녀의 집이었던 폐허 한 가운데서, 그녀는 “벽만이 남아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휩싸였다.”고 기억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협력 파트너인 바사 프라바(Vasa Prava)의 도움으로, 비세르카는 국내실향민 지위를 신청했고 2006년부터 보스니아와 헤체고비나에서 살고있는 113,000명의 국내실향민 중 한 명에 포함되었다. 지방 자치정부는 고라즈드에 있는 막사에 숙박 시설에 그들을 할당했는데 비세르카는, 오래된 친구이자 귀환민인 요바나카의 도움으로 그녀의 집에서 함께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비세르카는 사회 약자인 미혼모, 노인과 어린 아이들이 있는 대가족,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가족들에게 집을 재건해주는 유엔난민기구의 주거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발되었다. 총 22가족, 80명의 사람들이 사회적 보호, 보건 의료, 연금과 교육에 관한 권리의 보장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하여 고향으로의 귀환에 관한 원조를 받게 되었다.
작년 말, 비세르카는 고향 땅에 새로운 집에 정착했다. 적은 수준의 연금으로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가구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두 개의 침대, 탁자와 난로를 들여놓을 수 있었다.
1995년 이래로 집을 되찾은 1백만명 이상 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했다. 그룹으로서, 그들은 귀환 통계치를 나타낸다. 개개인으로서, 그들 개인은 용기를 상징한다.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보스니아의 귀환민들은 그들의 귀환이 환영받지 못하고 경제적 또는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 그들의 보금자리를 되찾았다.
비세르카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귀환 여성의 대표 사례로서, 그녀 자신의 귀환에도 큰 영향을 미친 네트워크를 다른 귀환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그녀는 다른 15명의 귀환 여성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같이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여성들은 정착을 잘한 경우이지만, 분쟁이 끝이 나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스니아헤체고비나의 수 천명의 국내실향민들은 여전히 심각한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가장 약자들은 주거, 심리적-사회적 지원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필요로한다.
비세르카가 증명한 것처럼, 작은 도움으로도 그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오늘날, 73세인 그녀는 사교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난 내가 살던 고향, 살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행복하고, 다른 여성들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모임을 갖게되어서 행복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비세르카와 아코는 자녀가 없었고,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일 그의 무덤을 찾아갈 정도로 여전히 특별한 유대감이 있다. 그녀 집에서 2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부근에, 그녀는장식용 나무, 장미 그리고 다른 꽃들을 가꾸는 정원을 갖고 있다. 이번 봄, 그녀는 토지 개간을시작하여 채소를 가꿀 계획이다.
그녀의 집에 있는 탁자 위에는, 1960년대에 그녀와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껴안고 있는 사진이 놓여있다. 그녀는 남편,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의 사진을 앨범 속에 보관하고 있다. 그녀는이러한 추억들이 있어서 행복하다며, 그로 인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힘을 준다고 얘기했다.
보스니아,헤체고비나, 고라즈드에서 네피사 메도세비치(Nefisa Medosevic), 미나 야사레비치(Mina Jasarev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