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ites icon close
Search form

해당 국가 사이트를 검색해 보세요.

Country profile

Country website

비극을 극복하고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 시작하는 콩고 가족

뉴스

비극을 극복하고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 시작하는 콩고 가족

2017년 6월 7일

비극을 극복하고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 시작하는 콩고 가족

보라 리지키(Bora Riziki)는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피신했다. 그 후, 그녀의 남편과 남자형제가 살해당했고, 그녀와 아이들은 유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를 얻었다.

보라 리지키의 얼굴에 새겨진 피로와 근심은 그녀가 24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믿기 힘들게 한다. 청소년 시절, 그녀는 부모님이 살해된 이후에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피신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했다.

몇 년이 지나 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녀는 차량 탈취 과정에서 남편이 총탄에 사망하는 것을 보았고, 곧이어 오랜 기간 떨어져서 지내다 다시 만난 남자형제 역시 살해당했다.

하지만 오늘날 보라는 행복하다. 그녀와 두 아이, 5살 아미나(Amina)와 7살 이브라힘(Ibrahim)은 가장 취약한 난민을 위한 유엔난민기구의 재정착 프로그램으로 케이프타운 근처의 마을을 떠나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델프트(Delft)라는 마을의 작은 집에서의 유엔난민기구가 인터뷰한 그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경험한 외국인 혐오와 본인과 자녀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된 상황에 대하여 설명했다.

“제 남편이 살해당하고 곧이어 남자형제도 살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미나와 이브라힘은 근처에서 놀고 있다. “ 그런 일을 겪은 후에 저는 누군가 저를 쳐다보면 너무 무서웠어요.” 델프트에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는게 좋고, 외국인이면 더욱 그렇다고 그녀는 말한다.

“제 남편이 살해당하고 곧이어 남자형제도 살해당했습니다.”

보라는 콩고 민주 공화국 남부 키부(Kivu) 지역, 탕가니카(Tanganyika) 호 북쪽 해안에 위치한 우비라(Uvira)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후, 삼촌과 함께 지내려고 했지만, 15살 때 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5개월간의 여정은 그녀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데려갔다.

“전쟁이 계속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삶이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때때로 음식도 먹을 수 없었어요.”

그녀는 탄자니아 통과하는 도중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수개월간 구금당했다. 풀려난 후, 그녀는 걷거나 배 또는기차를 타고 말라위를 거쳐 여정을 이오나갔다. 마침내 그녀는 남아공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의 여자 형제와 두 남자 형제와의 연락은 끊겼다.

그녀는 케이프타운 근처 필리피(Philippi)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동료 콩고 난민 루시가(Rusiga)가 거처를 마련하고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들은 곧 결혼을 하고 델프트 근처로 이사를 한 후 사업을 시작했다.

루시가는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그녀를 위해 음료수와 사탕 등을 파는 임시 슈퍼마켓을 차려주었다. “하지만 가게를 차린 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항상 물건을 도난당했어요.”

webstory img_06062017.jpg

보라와 아이들은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 UNHCR/James Oatway

webstory img_06062017_v2.jpg

보라와 그녀의 아이들과 친구들이 케이프타운의 국제공항에 도착하고있다. ⓒ UNHCR/James Oatway

webstory img_06062017_v3.jpg

보라는 남편이 살해당해서 두 아이들을 혼자 양육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 UNHCR/James Oatway

남편이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이야기를 할 때 그녀는 목소리는 작아지며 눈길을 돌렸다. 세 명의 무장 괴한이 부부가 집 앞에서 차안에 있는 동안 공격했다. “아미나는 아직 갓난 아기였습니다. 이브라힘은 당시에 3살이었고 뒷좌석에 타있었어요”라며 그녀는 회상했다. 무장 괴한들은 차를 둘러싸고 남편을 쏘았지만 그녀는 아미나를 안고 집으로 달려가 화장실에 숨을 수 있었다. 공격자들은 차에서 이브라힘을 잡아 구타했다.

아이는 가까스로 도망쳐 어머니와 합류했고 도둑들은 차를 훔쳐 도망쳤다. 남편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채 길거리로 기어가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행인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구급차를 불러 달라고 했지만 행인은 핸드폰을 들고 도망쳤다.

보라는 결국 길거리에서 진흙과 피를 뒤집어쓴 남편을 발견했다. “그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을 부탁해… 난 곧 죽을것 같아'.” 보라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누구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누구도.”

“하지만 누구도 저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누구도.”

남편의 죽음 이후, 더반(Durban)에 살던 남자형제가 와서 그녀와 함께 살며 아이들을 돌봤다. 일 년 후에 가족들의 상황은 나아졌고 보라는 과거의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길 바랬다.

“어느 날 집에 있었는데 누군가 저를 불렀습니다. 저의 남자 형제가 총에 맞았다고 했어요. 저는 병원에 갔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요.”

수많은 가족 비극에 이은 남자형제의 죽음을 보라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친구 중 하나가 심리 상담을 받으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녀는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폭력과 고문의 생존자를 위한 트라우마 센터에 찾아갔고, 그 발길이 그녀를 유엔난민기구로 향하게했다.

유엔난민기구의 직원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재정착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을 만큼 취약한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재정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개월 후, 프랑스에서 재정착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유엔난민기구 아프리카 남부 지역 재정착 담당관 일리야 토도로비치(Ilija Todorovic)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재정착을 가장 많이 신청하는 국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특정 지역이 외국인 혐오로 인한 심각한 보안 문제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저는 병원에 갔지만 이미 너무 늦었어요.”

“프랑스 당국은 매우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난민의 사례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호 문제나 특정한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강력하고 수량화 가능한 정당한 케이스들을 요청했어요. 그들은 이 사람들이 진정한 난민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어요. 또한 긴급하게 재정착이 필요한 있는 특정 케이스도 수용합니다. ”

비록 보라는 프랑스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 때문에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떠나게 되어 기쁘다. “때로는 무서웠고 때로는 기뻤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매우 기쁩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보라와 아이들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좋은 옷을 입었다. 국제이주기구의 직원 조 로데(Zoe Rohde)가 그들을 안내하였고 짐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델프트를 떠나서 기쁩니다. 하지만친구들과 다른 형제를 남겨두게 돼서 슬퍼요.” 라고 보라는 말한다.

그녀는 언젠가 그들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델프트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델프트에 돌아오고 싶지 않아요. 이곳은 안전하지 않아요.”

공항에서 눈물의 작별인사를 마친 보라는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과거를 뒤로하고 출국장으로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