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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기 위해 아이를 떠나보내다: 튀니지에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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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기 위해 아이를 떠나보내다: 튀니지에서의 이야기

2011년 3월 17일

살리기 위해 아이를 떠나보내다:튀니지에서의 이야기

추차 임시 난민촌에 다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텐트 안에 있는 오마르. 어린아이는 오마르의 자녀가 아니다: 그의 어린 딸은 모가디슈에 남겨졌다.추차 임시 난민촌, 튀니지, 3월 16일 (유엔난민기구) - 평온하고안정되어 보이는 25세의 압둘라 오마르(Abdullah Omar)는 최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의 1살짜리 어린 딸을 아직도 내전에 휩싸여있는 소말리아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는 딸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 결정은 그와 그의 아내 하디자(Khadija) 일생에 가장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다.

딸 아이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5개월 전이었다. “단 하루도 아이를 걱정하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하디자가 추차(Choucha) 임시 난민캠프에서 말했다.

이 어린 소말리아인 부부은 소말리아를 떠나 지난 4년 10일동안 밀수업자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사하라를 지나고, 교도소에 구금되고, 또 트리폴리에서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쫓기는 등 많은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중에도 딸을 포기하는 일이가장 힘들었다.

리비아에서 폭력과 분쟁을 피해 도망친 수 백명의 다른 소말리아인들과 함께 이 부부는 추차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내 가족의 미래도, 내 딸의 안위도 걱정되고 두렵다. 정말이지 두렵다.” 지난 주 비바람이 치던 아침에 임시난민촌 텐트에서 오마르가 말했다. “만약 모가디슈(Mogadishu, 소말리아의 수도)로 돌아가게되다면 죽임을 당할까 두렵다.”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난민들은 최근 리비아에서 대피한 20만명의 사람들 중 소수에 불과하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평화지역 국가에서 리비아에 잠시 머물던 이주노동자들은 곧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이 소수 난민들의 미래는 불확실 하다.

몇몇 난민들은 재정착하게 된다. 다른 이들은다른 나라의 난민촌에서 생활하는 등의 선택을 해야한다.“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오마르가 말했다.

그와 하디자의 여정은 4년 전 모가디슈에서 시작되었다. 에티오피아의 지원을 받는 임시 정부와 이슬람 법원 조합의 분쟁이 그들을 도시 밖으로 내몰았다. 그의 동생은 이 사태 중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고, 아내는 부상을 입었다.

그의 어머니는 집안의 가장으로서모든 가족의 대피로를마련하기위해 그가 먼저해외로 떠나야한다고 말했다.그와 아내 하디자는 처음 수단의 수도인 하르툼(Khartoum)으로 향해 그곳에서 밀수업자를 만나 리비아로 가는 방편을 구했다. 10일동안 메르세데스트럭 뒤에 숨어 이동했지만 결국 리비아 국경지대에서 붙잡혔다.

오마르는 사하라 사막 가운데 지역에 있는 교도소에5개월간 수감됐다. 하디자는 벵가지 항구 도시에 있는 교도소로 이송됐다. 오마르와 6명의 감방 동기들은 탈옥을 결심했다. “탈옥하다가 죽는것이 계속 이렇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오마르가 설명했다.

그들은 간수들을 무력화시키고 교도소에서 달아났다. 그날 40명의 죄수들이 탈옥했고, 오마르를 포함한 20명이 달아났다. 북쪽으로 도망치는 중에 그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아내의 삼촌으로부터 미국 달러 800불을 마련했다.

트리폴리에서 하디자는 청소부로 일했지만 곧 몸져누웠다. 오마르는 일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 출신들은 트리폴리에서 굉장히 낮은, 천한 일만 할수 있도록 허가되어있다.

첫 아이, 라얀(Rayan)이 태어나고 나자 “아내는 아팠다. 나는 딸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했지만 분유조차 살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직까지도 내 딸이 없어행복하지 않다.” 하디자는 어두운 텐트 한 코너에서 마지막으로 찍은 아이의 사진을 꺼냈다.

최근의 폭력 사태는 3주 전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출신의 아프리카인들이 "리비아인들을 죽이고 있다"는 텔레비전 방송에 의해 발발했다고 오마르가 말했다. 그와 그의 아내는 단번에 이 방송으로 자신들이 공격받을 거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들은 식량을 구하러 나가는 것 조차 두려워 2주 간 자신들의 아파트에서방어벽을 치고 숨어있었다. 인근 지역은 녹색 깃발들이 꽃혀진 도로 장애물들로 가득했다. “리비아 청년들이 우리는 계속 잡아두고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했다.” 오마르가말했다. 마침내 일주일 전 부부는 리비아 운전수에게 미국 달러 200불을 주고 국경지대로 대피했다.

그는 아직 리비아에 남아있는 친지들과 수천만명의 소말리아인들을 걱정한다. 그는 매일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는 최근 대피 노선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소말리아 여성들이 강간을 당한다는 소문들이 난민촌까지 흘러왔다. “아직 리비아에 남아있는 소말리아 인들이 걱정된다.” 그가 말했다.

오마르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유엔난민기구(UNHCR)는 국경지역에 난민촌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진 가족들의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상담을 제공하고 새로운 나라에서의 재정착이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난민촌 내에서 도움을 주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의 도시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분쟁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보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