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어머니의 이야기: 배신, 복수 그리고 재정착의 드라마
소말리아 어머니의 이야기: 배신, 복수 그리고 재정착의 드라마
소말리아 어머니의 이야기: 배신, 복수 그리고 재정착의 드라마

예멘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 소녀. 어린 난민들은 특히 인신매매의 위험에 취약하다
아덴, 예멘, 10월 15일 (유엔난민기구)-몇 년 전 예멘(Yemen)에서 딸을 납치로 잃어버린 후 소말리아 어투의 상냥함을 잃어버렸던 한 난민 여성이 웃음을 되찾았다. 딸의 납치는 카디자(Khadija*)의 고된 인생에 있어 최악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그 후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16살 짜리 딸인 카드라(Khadra*)와 다시 재회했고, 유엔난민기구의 권고로 북유럽에 재정착하게 되었다. 더욱이, 기념비적인 재판 사례에서 그녀의 예전 친구와 두명의 공범이 세계 범죄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신매매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재판은 예멘에서는 처음 있는 사례로서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카디자의 딸은 운이 따라주어 다치지 않고 비교적 무사히 탈출하였다. 그러나 난민들을 포함한 수백만의 피해자들은 인신매매 조직에 붙잡혀 강제노동, 감금, 강간, 성노예, 강제 매춘, 강제 노동, 장기 밀매, 육체 및 정신적 고문 및 다른 학대에 고통 받는다. 특히, 취약한 아동들은 더욱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제 삶은 고난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라고 카디자는 유엔난민기구에 말했다. 반 평생동안, 그녀의 고국인 소말리아는 분쟁으로 수만 명의 사망자와 수십 만의 실향민을 발생시켰다. 그녀 본인의 결혼 생활도 부족들간의 분쟁으로 파탄이 나서 그녀는 밀수업자의 배를 타고 예멘에 있는 아덴만을 건너 피난처를 구해야만 했다.
“저는 어머니와 딸을 뒤로하고 (1999년에) 나라를 떠나면서 정신적 외상을 겪었습니다. 예멘에서의 가난한 삶도 견뎠습니다.” 라고 카디자는 회상했다. 2002년에 그녀는 딸을 찾기 위해 소말리아로 돌아갔다.
난민이 되기 3년 전, 보사소(Bossaso)에 위치한 소말리아 항구 북부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을 무렵, 그녀는 자신을 굉장히 무시하곤 했던 이디오피아 난민인 파티마(Fatima*)와 첫 번째 숙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어느 날 오후에 손님들을 접대하고 있었는데 가게 뒷편에서 도움을 외치는 여자 울음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갔죠.” 라고 카디자는 말하며, 그 때 바닥에 누워 폭행범을 격퇴하려 하고 있는 파티마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저는 강간범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는 줄행랑을 쳤어요.”
그러나 두 여인은 지난 해 9월 아덴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녀가 너무 부유하게 살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방 4개짜리 집에서 3명의 가정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라고 나이든 카디자는 말하며, 파티마가 그녀의 딸인 카드라에게 직장을 제안했다고 했다. “저는 그게 과거에 제가 베푼 일에 보답하기 위한 상냥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약 3주 뒤, 카디자는 파티마로부터 그녀가 딸을 해고한다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비록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후에 저는 딸이랑 아이의 소지품들을 챙기기 위해 집으로 갔습니다.” 라고 카디자는 말했다. 그 다음날 카드라는 친구들 집을 방문하러 갔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밤새 잠도 못잔 카디자는 딸 카드라를 찾기 위해 파티마의 집에 갔다. 파티마는 딸이 사라진 것에 대해 모르는 척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딸의 옷과 비닐 가방을 발견하고 파티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그녀는 말했다.
경찰은 행동을 취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말했으나, 카디자는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딸이 예멘에 있는 샤봐(Shabwa) 지역에 어린 아프리카 소녀들을 국경 넘어 사우디 아라비아까지 납치하는 사람들에 의해 잡혀있으며, 잡힌 소녀들은 강제로 집안일이나 성노예로 쓰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제가 딸을 돌려 달라고 전화했더니, 그는 미화 250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두번째 전화에서는 1,000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라고 카다자는 털어놓았고, “저는 지불할 능력이 없었어요.” 라고 덧붙였다. 카디자는 딸을 구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 그녀는 경찰에게 갔다. 샤봐에 있는 경찰당국은 카드라의 석방에 대해 카디자와 협상을 하고 있던 두 명의 남자를 체포하였다. 그동안, 아덴에 있는 경찰은 파티마를 붙잡았다.
카드라가 아직 잡혀있던 상태에서 그것은 위험스런 행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카디자는 극도로 흥분한 목소리의 딸로부터 파티마와 공범자들의 석방을 보장하라고 간청하는 전화를 받았다. 어떤 남자는 전화연결 도중 그녀에게 딸을 다시 보고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디자는 협박에 떨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딸을 살리는 유일한 길은 그 세명의 범죄자들을 감옥에 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 저는 절대 희망을 잃지 않았어요. 제 안의 어떤 목소리가 딸이 살아있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협박이 그녀를 확신시켰다고 했다.
뜻밖에도, 올해 2월의 어느날, 그녀는 소말리아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제 딸이었습니다. 딸아이는 사우디 당국에 의해 억류되어 있다가 모가디슈로 이송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 째로, 그녀는 딸을 만나기 위해 소말리아로 돌아갔다. 곧 이어, 유엔난민기구는 그녀와 딸에게 재정착을 권고했다.
카디자는 그 소식에 의기양양해졌으나, 최종 결과가 필요했다. “제 딸을 납치해 인신매매를 하려고 했던 범죄자들이 재판을 받지 않고는 제가 평화롭게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에 동의했고, 파티마와 공범자들은 아덴에 위치한 재판소에서 지난 9월 25일10년 형의 선고와 미화 3,000달러의 보상금 지급 판정을 받았으며, 그 일주일 뒤 카디자와 그녀의 딸은 유럽에서의 새 삶을 위해 떠났다. “저는 이제 딸 아이의 미래와 새 집에 대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라고 카디자는 말했다.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