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의 나이팅게일,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목소리 되찾아
아제르바이잔의 나이팅게일,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목소리 되찾아
아제르바이잔의 나이팅게일,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목소리 되찾아
퀴질 굼의 실향여성들이 원래 요양원이었던 건물에 새로 설립된
심리/사회 재활센터에서 재봉틀을 다루고 있다.
바쿠, 아제르바이잔, 5월 12일 (유엔난민기구) -행복했던 어린시절, 매우 고왔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굴샨*을 나골노-카라박 마을 사람들은 “나이팅게일”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1992년 전쟁으로 가족 잃고 실향한 이 후 그녀에겐 더이상 노래할 것이 없었다.
당시 10세 소녀였던 굴샨과 그녀의 할아버지는 나골노-카라박에서 강제 실향한 이들을 수용하고 있던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인근의 전 요양원 건물에 머무르게 되었다. 성장하면서 그녀의 아픈 기억들은 계속해서 굴샨을 괴롭혔고, 그녀의 활발한 성격은 서서히 사라져 갔으며 배타적으로 변한 그녀는 퀴질 굼 지역사회에서 멀어져갔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절망과 애도 끝에 굴샨은 최근 삶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새로운 희망의 계기는 다름아닌 굴샨과 같은 실향민 사회의 여성들에게 재봉 및 자수 수업을 제공하고,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준 유엔난민기구의 신속효과사업이었다.
“수입을 낼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고 이를 통해 가사의 일부분이나마 충족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라고 굴샨이 말했다. 몇년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 후 그녀는 혼자 지내왔다.
그녀가 청강하는 수업은 유엔난민기구 협력단체인 ‘웨이 오브 매란콜리'가 주관하여 국내실향민 여성을 위한 심리?사회 재활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대표가 수업청강 희망여부를 물어본 것은 굴샨에겐 뜻밖의 기쁜일이였다고 한다. 현재 굴샨은 시트, 커튼, 전통치마 및 의상을 만들어 지역 가게 주인들에게 팔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유엔난민기구 대표 아룬 사라-느감은 그들이 굴샨과 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굴샨이 회복된 마음과 용기로 새로운 전문기술을 배우고 성공적으로 그 기술을 이용할 수 있을거라 믿고 바랍니다. 그녀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것입니다.” 라고 그는 말하였다.
실제로 굴샨은 그녀가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자활할수 있다. 정부의 도움은 더이상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직업과 상품화가 가능한 기술 보유는 굴샨으로 하여금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녀가 어린 소녀일때 그녀가 친구들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며 밝은 미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1992년 2월 어느 추운 겨울날, 굴샨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아제리과 알메니아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피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했다. 피난중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려 했으나 몇몇은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굴샨은 부모님과 형제 자매를 잃었다.
굴샨과 할아버지는 약 586,000명의 아제르바이잔 실향민중 약 4,000명이 살고 있는 퀴질 굼으로 보내지기 전 구금되어 있던 무리중에 있었다.
이들의 역경은 나골노-카라박을 두고 아제르바이젠과 알메니아 사이에 일어난 분쟁과 연결 되어있다. 현재 이곳은 알메니아 통제아래 있다. 많은 실향민들이 현재 취업과 안정되고 활발한 삶을 되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굴샨과 그녀와 함께 수업을 들은 여성들은 낙관적일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유엔난민기구의 사업이 그들이 퀴질 굼에서 안정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 믿고 있다. 어쩌면 굴샨의 나이팅게일과 같은 목소리도 돌아올지 모른다.
* 보호차원에서 이름변경
젠피라 세이도바, 바쿠, 아르제바이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