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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한국에 온 시리아 자동차 정비공의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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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한국에 온 시리아 자동차 정비공의 분투

2015년 3월 27일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한국에

시리아 자동차 정비공의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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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르가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대한민국, 3월 24일 (유엔난민기구)- 아자르 아흐마드(가명)가 2년 전 그의 고향 알레포를 떠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도망가자. 가능한 먼 곳으로.

시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피난처로 아자르는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그는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현대, 대우, 기아와 같은 한국 자동차들을 대상으로 구입·판매 및 중고차 사업에 종사했었고, 사업차 만났던 한국인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국경을 넘어 레바논에 도착한 서른 살 아자르는 한국 대사관에서 입국비자를 취득한 후, 2013년 3월 수도 서울에 도착하였다.

“가진 것은 여권이 전부였다” 아자르가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는, “출입국 사무소 직원에게 내가 난민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보를 요구하지 않고 이것을 나에게 주었다”며 그의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주었다.

그는 G-1 비자, 혹은 인도적 체류자 지위를 인정받은 상태로 한 번 갱신시 한국에 6개월씩 거주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는 또한 의료혜택 등 다른 보장을 받는다.

시리아 내전이 5년 째로 접어들며 시리아 난민의 수는 390만 명에 달한다. 이에 따라 한국을 찾는 비호 신청자의 수도 계속하여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까지 약 650명의 시리아인이 한국을 찾았고, 그 중 500명 가량이 인도적 체류 지위를 인정받았다.

시리아 내의 상황 악화와 위험 증가를 인지한 한국 정부는 2014년 시리아 비호신청자들이 통상적인 난민 심사 절차를 걸치지 않고도 한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였다. 난민 심사 절차는 상황에 따라 수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현재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730명의 인도적 지위 체류자 중, 대다수가 시리아인이다. 그중에는 팔레스타인인, 이집트인, 중국인, 그리고 미얀마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아자르는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알레포에서 사업을 운영하며 비교적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말, 무장단체가 그와 그의 파트너를 위협하여 사업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의 파트너가 납치되어 몸값으로 많은 돈을 내야 했다. 쿠르드인인 아자르는 이에 위협을 느끼고 떠나기로 결심했으며, “도망쳐야만 했다”고 말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로, 아자르는 그의 고향이 안전해져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합법적으로 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6개월에 한 번씩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는 이유로 좀 더 영구적이고 안전하며, 한국 고용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난민 지위를 받고 싶어한다.

아자르는 “난민 지위를 신청했지만, 한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았다”며, “난민 인정이 이루어지면, 한국에 남고 싶다. 하지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1994년 이후 9,800건의 비호 신청 중 두 명의 시리아인을 포함한 오직 470건의 사례만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G-1 비자는 6개월 간 유효하기 때문에, 많은 고용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언어 장벽 또한 한국 자동차를 잘 아는 숙련된 정비공인 아자르가 직장을 찾기 힘든 이유 중 하나이다. 그는 종종 아르바이트로 50,000원에서 100,000원 정도의 일당을 받는다. 터키에 있는 친척이 때때로 돈을 보내주지만, 그것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기는 힘들다.

그는 “해체해야 할 자동차가 있으면 일을 한다. 이 일에는 한국어가 필요 없고 나는 한국차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다”라며,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 며칠, 때로 몇 주까지 일이 없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난민이나 인도적 체류자들과는 달리 아자르는 수도 서울이 아닌 춘천이라는 동쪽의 작은 도시에 산다. 춘천은 서울보다 집세가 저렴하여 혼자 사는 아자르의 경우 매달 100,000원 이하의 월세로 검소한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그가 인도적 체류를 인정받기 전 한 달간 살았던 인천 집의 월세는 월500,000원이었다.

아자르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매우 아름답고 고향 알레포와 비슷한 느낌이며 한국인들도 친절하다”면서도 “지금도 전쟁이 빨리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만나고 싶다”며 고향을 그리워했다. 아자르의 어머니와 형은 시리아에 남아있는 그의 유일한 가족이며, 나머지 가족들은 터키나 벨기에,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음

대한민국, 서울에서 신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