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탐색: 남편을 찾으며 아들에게 희망을 거는 마리안
여인의 탐색: 남편을 찾으며 아들에게 희망을 거는 마리안
여인의 탐색: 남편을 찾으며 아들에게 희망을 거는 마리안

마리안(Marian)의 아들 오마(Omar)는 리비아(Libya) 수도에 위치한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있고, 그의 어머니는 이들의 생활을 위해 충분히 벌고 있다. 이 두 명의 난민신청자는 유엔난민기구(UNHCR)의 ‘가장 절박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등록되어있다.
트리폴리, 리비아, 3월 28일 (유엔난민기구) - 마리안*이 힘든 생활을 버텨내는 정신적 지주이자 빛이 되어준 것은 그녀의 남편 하산(Hassan)을 향한 사랑이었다. 2011년 리비아에서 이주노동자 신분이던 남편이 실종됐을 때, 마리안은 어린 아들과 함께 수단 홍해 해안에 있는 그녀의 시댁을 떠나 사하라 사막을 건너 그를 찾기로 결심했다.
약 2년이 흘렀지만, 마리안은 트리폴리에서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직도 그녀의 실종된 남편을 찾길 희망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품고 있지만 그녀에겐 최소한 10살 된 사랑하는 아들 오마가 있다. 오마는 두 사람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모자간의 깊은 연대는 분명하다. 그리고 마리안이 남편을 찾기 위해 어린 아들을 동행한 이유는 그녀의 부모가 1988년 에리트레아(Eritrea)가 에티오피아(Ethiopia)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치룬 전쟁 중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해진다. 그녀는 아들과 헤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 오마는 리비아의 수도에 위치한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고 그의 어머니는 유엔난민기구와 덴마크 난민위원회(Danish Refugee Council)가 지원하는 지역 사회 개발 센터에서 가정부와 보모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다. 이 두 명의 난민신청자들은 유엔난민기구(UNHCR)의 ‘가장 절박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등록되어있다.
마리안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강인한 이 여인에게 이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마리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들의 미래이며, 그래서 그녀는 아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준 유엔난민기구에게 감사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리비아 사무소의 대표인 임마뉴엘 지그낙(Emmanuel Gignac)은 오마와 같은 난민아이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 미래를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유엔난민기구가) 리비아에서 활동을 재개한 2011년 (8월)부터 난민과 난민신청자 - 특히 가장 절박한 상황에 놓은 이들 -를 위한 직업훈련과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했다”고 밝혔다.
마리안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부모가 사망한 후 그녀는 1988년, 안전을 위해 가족을 수단으로 이주시킨 삼촌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들은 1991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렀으며 그 후 에리트레아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도 마리안과 가족들이 기대했던 행복한 결말은 없었다. 에리트레아의 부패와 독재는 이들의 환상을 깨뜨렸다. 이들의 환멸감은 정부가 에티오피아의 국경분쟁이 전쟁으로 확대된 후 의무적 남녀 군복무 제도를 도입하자 더욱 심해졌다.
마리안의 삼촌은 1999년 마리안과 그의 가족을 데리고 홍해의 수단 항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마리안은 이곳의 현지인인 하산을 만나 결혼했고 2003년 오마가 태어났다. 5년 후 하산은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리비아로 떠났다.
하산은 매달 마리안에게 돈을 보냈고 정기적으로 전화도 했다. 하지만 2011년 2월, 리비아에서 분쟁이 발생한 후 하산은 송금을 중지했고 전화 역시 줄어들었다. 전화가 아예 중단되자 마리안은 남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친구들의 경제적 도움을 바탕으로 마리안과 오마는 리비아로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지난 6월 탑승했다. 마리안은 버스가 “너무도 사람들로 꽉 들어차 영혼이 밖으로 쥐어짜나가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승객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수단 및 소말리아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었고, 오마는 이 길고 고된 여정의 유일한 어린이 승객이었다. 이들의 식량과 식수는 제한되어있었고 어떤 승객들은 도중에 사망했다. 여정은 버스가 사고에 휘말리면서 중단되었다. 이 혼돈 속에서 마리안은 그녀의 가방과 하산의 사진을 분실했다.
이들은 또 다른 교통편을 찾았지만 시련은 계속되었다. 경찰에게 강도를 당했고, 무장한 남자들에게 붙잡혀 남 트로폴리에서 64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리비아 사막 도시인 사바(Sabha)에 감금당했다. 마리안은 오마와 함께 탈출하기 전 이들에게 더 많은 돈을 넘겨줘야 했다고 말했다.
한 친절한 노인의 도움으로 마리안은 트리폴리로 향하는 버스를 찾았고, 이 대도시에 도착하자 하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리안의 남편을 위한 탐색은 계속되고 있지만 트리폴리에 도착한 그녀는 아들과의 생활을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10월, 그녀는 유엔난민기구가 난민아이들을 돌볼 사람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이 일에 지원했고 현재 주5일 지역사회 개발 센터에서 주로 부모가 유엔난민기구에 등록절차를 거치고 있는 시리아 난민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또한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으로 오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오마는 모든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이며 새로운 친구 역시 많이 만들었다. 아직 직업을 생각하기엔 이를 수도 있지만 오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오마는 “내가 사람들을 치료하면 하나님이 보상해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미래지향적이고, 낙관적이며 호기심과 자신감이 있는 올바른 사고방식이다.
한편, 오마의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에서 잘 하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고 수입원이 생긴 것에 안도하고 있다. 그녀는 오마를 위해 최상의 것을 희망하면서도, 국제적십자 위원회(The International Committee for the Red Cross)의 도움으로 실종된 남편을 계속해서 찾으며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망명 관련 입법의 부재와 리비아의 계속되는 불안을 우려한다.
유엔난민기구의 지그낙은 “리비아의 망명 시스템의 부재는 (유엔난민기구의) 보호대상자들이 계속해서 심각한 위험과 대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분쟁 후 상황이 나아졌고 당국자들이 난민 신청자와 난민 보호에 대한 인식을 넓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임마뉴엘라 파올레띠 (Emanuela Paoletti), 트리폴리, 리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