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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수만명의 브룬디 난민 귀화허락한 탄자니아에 극찬

뉴스

유엔난민기구, 수만명의 브룬디 난민 귀화허락한 탄자니아에 극찬

2010년 4월 16일

유엔난민기구, 수만명의 브룬디 난민 귀화허락한 탄자니아에 극찬

카툼바 정착촌의 여성, 탄자니아 귀화 허락에 환호


카툼바, 탄자니아, 4월 15일-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1972년 탄자니아로 피난 온 수만명의 브룬디 난민에게 시민권 부여를 결정한 탄자니아에 찬사를 보냈다.


구테레스는 탄자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카툼바구 방문 중 소위 “1972 브룬디 난민들”이라고 불리는 집단에 정부가 2008년에 시작한 귀화운동을 이행하여 162,000명의 난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고 내무부 장관 로렌스 마샤로 부터 전달받았다. 더하여 “1972 브룬디 난민들” 중 약 53,600명 정도는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본국 귀환을 선택하였다.


“여러분을 더 이상 난민이 아닌 탄자니아인으로서 제일 먼저 환영합니다.” 라고 말한 마샤는 시민권을 획득한 브룬디 난민의 첫 정식 명단을 게시하였다.


카툼바는 “1972 브룬디 난민들”이 생활하는 이른바 3개의 “구 정착촌” 중 한 곳이였다. 비슷한 통보가 미샤모 및 울얀쿨루의 다른 정착촌에도 탄자니아 이민국 공무원 대표에 의해 동시에 발표되었다. 귀화한 브룬디인들은 이제 탄자니아 일반주민들과 같이 생활 할 것이다.


구테레스는 브룬디 난민을 위해 영구적 해결방안을 제시한 탄자니아 정부의 “전례 없는 관대함와 용기있는 결정”에 극찬을 보냈다. 한 국가가 한번에 이렇게 많은 수의 유엔난민기구 보호대상자인 난민의 귀화를 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다. 이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매우 기쁘다.” 라고 말한 구테레스는 탄자니아 인들과 지도자들에게 “깊은 사의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고등판무관과 마샤는 수백명의 인파가 모인 카툼바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브룬디인들은 감사의 표시로 다채로운 노래와 곡예에 가까운 춤을 선보였다.


난민대표 페스토 크리스핀은 정부에 감사하며 모범적인 시민이 될 것을 약속하였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때까지 우리는 안내와 도움이 필요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고등판무관은 국제사회의 탄자니아의 관대한 결정에 대한 인지와 기부자들이 새로운 시민들의 적응과정이 성공적일수 있도록 긍정적인 응답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고등판무관은 오랜 난민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이 탄자니아의 본보기를 따를 것을 강조했다.


수요일에 구테레스는 카수루의 니아루구수 정착촌을 돌아보았다. 이곳은 1990년도에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지역에서 발생한 내전을 피해 피난한 약 60,000명의 콩고 난민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그는 또한 탕카니이카 강 인근에 위치한 키고마 마을 주변에 정착한 “1972 브룬디 난민” 단체의 난민등록현장을 볼 수 있었다. 탄자니아 정부는 이들의 귀화 허락을 고려할 것을 동의했다.


탄자니아의 수도인 달-에스-살라암에서 고등판무관은 피터 핀다 수상을 면담하였다. 수상은 탄자니아 정부가 귀화한 브룬디 인이 탄자니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것을 약속하였다.


내무부 장관 마샤는 화요일 달-에스-살라암 대학 사회학과 4학년인 피델리따 모멘예를 포함한 3명의 브룬디 학생에게 귀화 증명서를 전달하였다. 25세의 모멘예는 탄자니아 시민이 된 최초의 브룬디 난민이 되어 영광이라고 말하였다.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전환점” 이라고 모옌메는 말하였다. 그녀는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교육받았다. 탄자니아 교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많은 탄자니아 인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나는 이제 내 지식을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쓸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 맹세하였다.


마샤는 새로운 시민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보내었다. “이들은 탄자니아 인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받는다. 자유롭게 다닐수 있으며 시민권의 모든 이익을 보장받는다. 어디에서든 취직이 가능하며 일반 탄자니아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 라고 그는 강조하였다.


카툼바 방문 중 고등판무관은 최근에 귀화한 가족들을 면담하였다. 1972년에 부모와 함께 카툼바로 피난온 52세의 보아스 요하나 마주토는 “이제 탄자니아내에서 어느곳이든 갈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놀랍기만 하다.” 라고 말하였다.


유섭 하산, 카툼바, 탄자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