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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재정착 담당관 동료 난민을 돕기 위한 기회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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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 재정착 담당관 동료 난민을 돕기 위한 기회를 잡다

2010년 3월 6일

유엔난민기구 재정착 담당관 동료 난민을 돕기 위한 기회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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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힌 재정착 담당관이 다른 이들을 돕기위한 업무로 그녀의 난민 경험을 회상한다

워싱턴 D.C., 미국, 3월 5일 (유엔난민기구) - 유엔난민기구 직원인 티나 힌(Tina Hinh)씨는 미국에 재정착한 수많은 베트남 난민들 중 한 사람이다. 1978년 그녀의 어머니께서 티나를 임신하고 있었을 때, 그녀의 가족은 보트로 베트남을 빠져나왔다. 인도차이나 출신의 난민이 모여있는 가장 큰 난민촌이 위치한 말레이시아 쁠라우 비동에 도착하였다. 티나의 가족은 1979년 미국으로부터 재정착을 허가 받았다. 티나는 최근 유엔난민기구 공보관 릴리나입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인터뷰 발췌록이다 :

쁠라우 비동에서의 삶에 대하여 부모님은 어떻다고 하시던가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난민촌에서의 삶은 굉장히 불편하고 어려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주 어려운 상황속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한밤 중에 저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는 임시 오두막에서 잠을 잤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적은 수입이라도 벌기 위해 돈 대신 금으로 다른 난민들에게 팔 물건들을 사러 섬에서 보트까지 헤엄쳐 다니셨습니다.


제가 아팠을 때는 어머님께서 제가 나아질 때까지 프랑스 의료 보트로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가족들이 그 곳에서 머무는 동아 유엔난민기구는 콸라룸푸르에 있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 직원들은 보트를 타고 난민촌을 방문하여, 난민 등록을 하고, 난민을 지원하였습니다. 그 이후, 그 곳은 재정착 절차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으나, 당시 1979년 부모님이 그 곳에 계실 때에는 재정착이 아주 작은 규모로, 임시적으로 진행될 때였습니다.


미국에 어떻게 오신게 된 건가요?
제 모든 친가 가족들은 다 다른 시기에 베트남을 떠났습니다. 우리 가족과 고모는 말레이시아로 함께 떠났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머지 가족들은 홍콩으로 떠났습니다. 재정착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Church World Service 의 도움으로 미국 미시간에 재정착한 고모가 있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의 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을 통해 미시간의 한 목사님께서 말레이시아에 있는 우리를 찾아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80 년대 공식 미국 재정착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전 우리는 1979년 봄 고모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족들이 가장 처음 경험하게 된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30년 전 부모님께서 미국에 오셨을 때는 영어도 모르셨고, 돈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고등 졸업장 밖에 없었지만, 오빠와 저를 포함해서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을 일해야했던 첫 10년 동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영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허드렛 일을 해야했습니다. 20년 전에야 부모님은 부모님만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정말 열심히 일하셨기 때문에 나는 맞벌이 부부의 아이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는 아메리칸 드림이 되었습니다. 부모님 스스로 삶을 다시 일으키셨고, 자녀들을 위해 교육을 해줄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15년 전에는 외가쪽 식구들이 베트남에서 왔습니다. 부모님은 가족들을 제일 먼저 고용하셨고, 이제 가족들은 각기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와 다른 기구에서 어떤 난민 업무를 하셨나요?
저는 주로 재정착 관련한 업무를 맡아왔습니다. 유엔난민기구에서 일하기 전에는 태국-버마 국경의 IRC(International Rescure Committee)에서 미국으로 재정착하려는 버마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저는 미국을 가려는 난민들을 인터뷰하였습니다. 지금은 워싱턴 유엔난민기구 사무소에서 재정착 담당관으로서 국제 재정착 통계와 재정착 케이스워크에 대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당신의 과거가 당신의 업무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부모님께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부모님을 도와주어 얼마나 감동받았었는지 늘 말씀해 주셨습니다.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늘 난민문제에 대해 관심가져 왔습니다. 현재 머무는 곳에 계속 머무를지 미국에서 재정착 할지를 고민하는 버마의 한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어디서 왔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장 연관이 있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가족들에게 저도 난민이었고, 저도 이와같은 난민촌에서 왔다고 이야기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들- 자녀들을 위하여 미국으로 올 결심을 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미국이 우리나라 입니다. 그들에게 이것을 이야기해주면 그들의 눈에서 희망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