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활동하며 난민 돕는 자매그룹 “스윗 러쉬”
음악 활동하며 난민 돕는 자매그룹 “스윗 러쉬”
음악 활동하며 난민 돕는 자매 그룹 “스윗 러쉬”

최근 제네바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본부를 방문한 자매 시함 하시와 이만 하시.
이들은 “스윗 러쉬(Sweet Rush)” 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제네바, 11월 2일 (유엔난민기구)-모가디슈 태생의 시함 하시(Siham Hashi)와 이만 하시(Iman Hashi) 자매는 미국의 대형 기획사와 음반 계약을 맺은 최초의 소말리아 여성 음악인들이다. 1990년대에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한 후, 두 자매와 가족들은 난민 자격으로 캐나다로 떠났다. 이들은 현재 로스 앤젤레스(Los Angeles)에서 “스윗 러쉬(Sweet Rush)” 라는 그룹 이름으로 첫 번째 음반을 녹음 중이며, 시간을 내어 고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분쟁 문제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자매는 최근 제네바에서 열린 난센 난민상(Nansen Refugee Award) 시상식 공연을 하였고, 레오 돕스(Leo Dobbs) 유엔난민기구 웹 에디터를 만나 그들의 삶과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
"소말리아를 떠날 당시의 상황을 얘기해 주세요"
시함:저희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지만 소말리아에 대한 추억이 많지는 않아요. 저희 어머니께서 소말리아 외교관이셔서 사우디 아라비아로 이사를 갔죠. 거기서 1,2년 정도를 지낸 후 독일로 이사를 갔습니다. 내전이 일어났을 때 (1991년) 저희는 캐나다에 정착을 한 상태였어요. 우리가 (부모님과 두 명의 자매 및 한 명의 남자형제) 캐나다로 갔을 때는 영어를 배워야 했죠. (토론토에서) 저희는 더이상 원하는 걸 예전처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저희를 많이 보살펴 주시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저희가 가진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끔 하셨어요.
"토론토는 세계적인 대도시입니다. 어려운 점이 있었던 적은 없습니까?"
이만:중학교를 다닐 때 저희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그저, “그래, 우리는 애들이야.” 라고 생각했었어요.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들을 귀담아 듣지 않았죠.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물어보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넌 어디서 왔니?” “난 소말리아에서 왔어.” “소말리아에서 왔다고? 거기는 굶어 죽는 사람들만 있고, 배가 볼록 나온 애들이랑 고아들이 사는 곳이잖아.” 그러자 저는 대답했죠, “뭐라고! 아니야. 소말리아는 아름다운 곳이야. 지금은 그냥 좀 어려운 문제에 처했을 뿐이야.”
굉장히 힘들었어요. 중학생들은 짓궂잖아요. 그 때야말로 저는 사람들이, “아, 그러니까 너는 난민이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내가 난민인지 아닌지 너가 어떻게 아니?” 라고 말했죠. 그리고 난 후 어머니께서 우리가 난민이라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그 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배웠죠.
"음악은 어떻게 배우게 되었나요?"
이맘:저희는 매우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이슬람) 가정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께서 매우 엄하셔서 교육에 대해 걱정하시고 음악은 절대 권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는 매우 관대하셔서 저희가 어렸을 때,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나 다른 유명한 노래들을 부를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리고는 “너희들 노래 잘 하는구나” 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재밌는 것은 저희 부모님도 노래를 하신다는 건데, 아무도 집에서 격려해 주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그냥 저희 둘이 항상 같이 부르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보컬 수업이나 학교 놀이처럼 노래연습은 모두 학교 위주였어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요?"
이맘:그 다음 우리는 아틀란타로 이사를 했어요. 아틀란타로 가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부모님께서는, “안된다. 우리는 너희가 대학에 가서 의사가 되기를 바래. 그래서 너희를 여기로 데려온 거야. 이건 너희가 많은 걸 할 수 있는 기회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우리는, “우리도 학교가 좋지만 학교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저희의 꿈을 꾸면 안되나요.” 거의 계속되는 전쟁이었죠.
하지만 마침내 저희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셨고 저희는 아틀란타로 이사를 갔어요. 고모께서 아틀란타에 사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난 너희 고모는 믿으니까 고모와 같이 살거라” 라고 하셨어요. 그게 저희가 허락을 받은 유일한 이유였어요. 그곳에서 그냥 사람들을 만나고 스튜디오에서 녹음도 했습니다. 정말 어려웠어요. 하지만 저희가 음반 계약을 맺자, 마치 “어머나, 세상에.” 와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집에서는 부모님께서 많이 다투셨어요. 소말리아의 문화와 종교에서는 이런 것이 금기시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모님께서 저희를 보낸 결정에 대해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모두들 저희 부모님께 화가 나셨어요. 소말리아 공동체는 매우 좁거든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상관 않으시고, “우리는 딸들을 믿고, 이게 그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존중해줘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음반 계약을 성사시켰고 … 소말리아에 있는 사람들은, “얘네들이 정말 노래를 하네” 라고 생각하셨죠. 지금은 정말 대단한 제작자분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고, 매일 굉장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어요.
"난민들에 관한 노래를 부르나요?"
이맘:네, 저희가 난센 난민상 수상식에서 공연을 했던 “쉘터(Shelter, 임시거처)” 라는 곡이 있어요. 특별히 임시거처와 난민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노래는 아니에요. 노래를 듣는 누구나 자신들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썼어요. 노래를 한 번 들어보세요 ? 난민들에 관한 노래처럼 들릴 수도 있을 거에요.
그리고 또, “저를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Take me Home)” 라는 노래도 있어요. 저희는 소말리아에 관한 노래를 쓰고 싶었지만, 어떤 사람도 제외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느 나라 사람이 듣더라도, “어머나, 내 나라로 돌아갈 수 있구나”라고 느낄 거에요.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소말리아에 관해 쓴 것이죠.
"소말리아를 다시 방문한 적이 있나요?"
이맘:아니요, 하지만 우리는 항상 얘기해요. 소말리아도 어떤 지역은 좀 더 정착이 잘 되어있고,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저희가 모가디슈에서 태어났고,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그게 꿈이에요. 저희 고모는 아직 모가디슈에 계세요. 친척들이 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저희는 돈을 보내드려요.
"케냐에 있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거주하는 다답(Dadaab) 난민촌에는 가보셨나요?"
시함:아니요, 하지만 머지 않아 한 번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저희 종조부와 7명의 자녀들이 거기 있는데,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아무도 그 사실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거든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어요. 마치, “우리는 이렇게 멋진 삶을 살고 있는데, 우리한테 아직도 난민촌에 사는 친척들이 있다구?” 하는 느낌이었죠. 그냥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언제 인도주의적 관점을 갖기 시작했습니까?"
이맘:최근에 비영리 기구를 만들었어요. 지난 3년간 논의해 왔던 겁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묻곤 했어요: “어떤 일을 진정으로 하고 싶습니까?” 그럼 우리는 소말리아를 돕고 싶다고 말하곤 했지만, 오랫동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소말리아에 대해 생각할 때 주로 해적이나 종교 분쟁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죠. 늘 굉장히 부정적이에요. 마치, 왜 그 어지러운 문제와 정치에 관여하려 하느냐고 묻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게 우리 세대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언젠가는 더 나은 소말리아가 되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다시 일어난 소말리아(Somalia Lives Again)”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소말리아 난민들과 세계 최대의 난민촌(다답 난민촌)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지요. 가끔은 모금을 하기가 힘들기 대문에, 인식을 높이기 위해 자선 공연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유엔난민기구(UNHCR)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답과 세계 곳곳에 있는)난민촌에 대해서조차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소말리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죠. 난민촌에 소말리아 난민들이 있다는 걸 모르는 소말리아 출신 사람들을 알았을 때는 정말 가슴이 무너졌어요. 저희는 저희의 음악과 목소리, 그리고 스스로 지은 “스윗 러쉬”라는 이름을 이용해서 인식을 높이고 있습니다.
"난센 난민상 수상식에서 노래를 부를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시함:굉장했습니다. 저희는 그저 공연 초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했고, 굉장히 즐거웠어요. 그냥 그 무대에 서서 고국에 대한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사람들이 노래를 잘 받아들여 줬어요. 굉장힌 기분이었어요.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시함:저는 우리가 아주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이렇게 한 발자국 나서서 저희의 열정을 추구하는 것 조차 이미 소말리아 소녀들과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정말 변화를 주었어요. 예전에 그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그 작은 상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우리가 그 상자를 빠져나온 것을 보고는 아이들은 생각하죠, “어쩌면 나도 꿈을 좇을 수 있겠다.” 라구요. 구지 음악일 필요는 없어요. 무엇이든,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큰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또한 음악이 세계적인 언어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모든 이들을 감동시키죠.
"장래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요?"
이맘:지금 정말 훌륭한 앨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말리아 음악을 접합시켜서 약간 더 현대적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그걸 ‘부족 음악 (tribal pop)'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저희의 계획은 이 앨범을 끝낸 후에 세계 투어를 떠나서 활동을 계속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