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도망쳐야 했지만, 다른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교육까지는 운명에 맡기길 거부했습니다
저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도망쳐야 했지만, 다른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교육까지는 운명에 맡기길 거부했습니다
저는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도망쳐야 했지만, 다른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교육까지는 운명에 맡기길 거부했습니다
고국에 있는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긴 상황에서, 국경 너머의 교육을 가능케 하기 위해 저는 과학 기술을 이용했습니다. 금번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저는 국제사회의 구성원들이 아프간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 보장을 위해 힘쓰기를 촉구합니다.

아이샤 커람(Aisha Khurram)이 2022년 9월 뉴욕에서 열린 UN TES (UN Transforming Education Summit) 개막일에 발언하는 모습 ⓒ UNESCO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우리는 고통스러운 ? 특히, 지난 20년간 행해졌던 여성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릴 수도 있는 ? 역사의 반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의) 사실상 집권 정부는 사회 내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그들의 앞선 약속에도 불구하고, 저는 완전히 다른, 실제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그 현실은 소녀들의 고등교육 접근을 금지하는 것으로 시작해, 모든 공공 부문에서 점차적인 여성의 존재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내 여성과 소녀들에게 어두운 미래만을 약속한 그 첫 번째 법령 이후, 저는 학업을 이어 나가고 끝마치려면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2021년 8월 28일, 저는 가족에게 작별을 고했고 법 전공으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집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물건을 넣은 작은 배낭을 메고 밤에 떠나면서 저는 검문소에서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길고 지루한 여정을 떠났습니다.
남동생과 함께, 우리는 8개의 지역을 건너며 아프가니스탄을 횡단했고 마침내 이란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몇 달의 이동 끝에, 저는 독일에서 비호 신청을 했고 제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새로운 수용 공동체에 도착하는 대부분 난민들처럼, 저는 혼란스러운 새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제 궁극적인 목표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실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지만, 독일 대학교에 입학하려던 초기의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갔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능숙한 언어를 구사하려면 최소 3년이 걸리고, 그 후에 학위 과정을 새로 시작해야 하기에 언어가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였습니다.
불확실성, 실향 그리고 간절함 속에서의 처음 몇 달 동안, 저는 가능한 방법을 샅샅이 찾아보며 모든 문을 두드렸고 결국 생각지 못한 기회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말, 바드 칼리지 베를린(Bard College Berlin)은 근래에 실향한 아프간 학생들을 위한 특별 장학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저는 그 기회를 제공받은 학생들 중의 한 명으로 정치학 공부를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해당) 대학교는 2년간의 이전 교과목 이수도 인정해주었습니다.
교실로 돌아가는 것은 오늘날 오직 몇몇 아프간 소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이례적인 혜택입니다. 수백만 명의 아프간 소녀들이 교육에 대한 기본 권리를 박탈당한 상황이었기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기쁨은 깊은 생존자의 죄책감(survivor guilt)과 동반되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Jalalabad)의 셰이크 메스리 중학교(Sheikh Mesri School) 교실의 여학생들. 6학년 이상의 소녀들은 아프가니스탄 내 학교에 이제는 갈 수 없고, 오후에는 학교 시설들은 오직 소년들을 위해 쓰인다.ⓒ UNHCR/Oxygen Film Studio
2022년 중반까지, 여성 및 소녀들이 설 자리는 더더욱 좁아졌고,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그들은 거리로 나가 ‘빵, 직장, 자유!'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더 많은 가족들은 딸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당함에 자극 받은 저는 소극적인 방관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대신 고향에 있는 자매들을 위해 지지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습니다. 또, 조국의 교육 위기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해결 방안들을 탐색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습니다.
2022년 2월, 저는 조지아 출신 평화 운동가이자 유엔 청소년 대표단으로 이전에 함께 활동했던 리카 토리카쉬비리(Lika Torikashvili)와 하나의 이니셔티브를 추진했습니다. 우리는 각각 재학 중이던 베를린과 뉴욕의 대학교들을 아프가니스탄 6개의 다른 지역에서 온 어린 여학우들과 연결해 줄 비공개회의를 주관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소재 베닝턴 대학교는 6명의 여학생들에게 온라인 장학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학점이 인정되는 온라인 강좌를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 시험 단계는 온라인 교육의 실현 가능성을 증명했고, 아프가니스탄 교육 위기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희망 또한 갖게 했습니다.
일 년 동안의 로비/청원 활동 끝에,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내 여성들을 위한 원거리 교육 이니셔티브를 개시할 수 있었고, 뉴욕, 베를린,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애리조나 내 대학교들의 지지와 교육 지원 덕분에 여학생들에게 온라인 장학금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카불 내 10명의 여학생들에게는 이제 온라인 교육을 통해 학업을 이어 나가고 학위를 취득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교육 모델이 성공한다면, 아프가니스탄 내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음식과 물만큼이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은 소녀들이 학교와 대학교에 다닐 수 없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입니다. 그들의 삶은 불확실성과 고립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원거리 교육 대응 방안은 한 가지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프간 소녀들은 교육에 접근하기 위해 정치적 그리고 인도주의적 재난이 해결되기만을 기다릴 수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됩니다. 현재진행형인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에게 교육은 음식과 물만큼이나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2초에 한 명씩 어떤 이는 집을 떠나야만 하는 분쟁, 재난,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고등교육은 난민들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가의 사람들, 특히 어린 나이의 여성들이 주체성과 안정감을 되찾기 위해서 필수적인 경로이지만 글로벌 차원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그에 알맞게 대응하고 있지 않습니다.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교육의 시대, 즉 난민 캠프의 어린 소녀들이나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동등하게 교육을 보장받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오늘날 과학기술의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합니다.
교육, 더 중요하게는, 여성들의 창의력과 변화 능력은 함께 할 때 어둠을 밝히고 전체주의의 제약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할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저는 국제사회가 이 두 요소들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이 글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독일에 정착한 후, 현재는 ‘고등교육 과정의 난민 학생 네트워크 (Tertiary Refugee Student Network)'의 지역장을 맡으며 바드 칼리지 베를린(Bard College Berlin)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아이샤 커람(Aisha Khurram)이 유엔난민기구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