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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 차가운 계절의 문턱에서 세상 모든 곳에 온기를

스토리

[겨울호] 차가운 계절의 문턱에서 세상 모든 곳에 온기를

2025년 12월 4일
Jordan. Omran, 12 years old Syrian refugee, warming himself using UNHCR blanket inside their shelter in Zaatari refugee camp.

아무것도 없이 집을 떠난 이들에게 겨울은 언제나 두려운 계절입니다.

요르단 자타리 난민촌에서는 천장에서 새어드는 물소리가 사람들의 밤잠을 깨우고, 우크라이나 최전방 마을에서는 폭격이 무너뜨린 폐허들 사이로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골 마을에서는 집을 잃은 가족이 동굴 속 얼음장 같은 바닥 위에서 두려움 속에 하루를 보냅니다.

사방에서 파고드는 바람은, 각자의 기억 속 혹독했던 지난겨울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요르단

Jordan. Omran, 12 years old Syrian refugee, warming himself and his 3 years old sister Miral using UNHCR blanket inside their shelter in Zaatari refugee camp.

요르단 자타리(Zaatari) 난민촌에 사는 옴란(Omran)은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 열두 살 소년입니다. 영상 편집과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옴란은 언젠가 유튜버가 되어 난민촌 안에서의 삶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일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옴란은 환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그 웃음도 잠시 멈춥니다. 마을은 차가운 바람과 진흙으로 뒤덮이고, 전기가 끊기면 공부도 놀이도, 꿈꾸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난민촌 밖으로 나가는 교통비는 너무 비싸 아이들은 긴 겨우내 텐트 안에서 머물곤 합니다. 겨울의 추위는 유난히 깊고 힘겹기만 합니다.

Jordan. Khaled sitting with his children inside their substandard shelter in Amman suburb

시리아 하마(Hama) 출신의 칼레드(Khaled)는 2013년 내전을 피해 요르단으로 피난했습니다. 시리아에서 칼레드는 올리브 나무가 멋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땅도, 집도, 차도, 가축들까지 전부 두고 아무것도 없이 떠난 그는 어느새 12년째 자타리 난민촌의 텐트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겨울은 칼레드와 가족들에게 가장 두려운 계절입니다. 난민촌 임시거처 안은 춥고, 비라도 내리는 날엔 텐트 바닥은 금세 진흙탕이 됩니다.

“비가 오면 밤새 잠들 수가 없어요. 한두 시간마다 일어나 천장에서 물이 새진 않는지 확인해야 하거든요. 비닐이 찢어지면 정말 큰 일이에요.”

난방용 가스통 하나는 사흘을 채 버티지 못합니다. 칼레드의 여섯 딸 중 세 명은 선천적인 장애로 면역력이 약해 조금만 추워도 아프기 때문에 차마 난로를 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서 약을 사야 하니 난로를 꺼놓을 수 없지만, 매달 열 통 넘는 가스비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칼레드는 여전히 고향에서의 겨울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늘 따뜻했던 집, 가족과 이웃이 모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시간들. 지금은 느낄 수 없는 평온함이 그립지만, 칼레드는 언젠가 다시 그 온기를 되찾을 날을 기다리며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매일이 쉽지 않아요. 그래도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버팁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자타리 난민촌 내 난민 가족에게 현금 지원을 제공하며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칼레드 가족처럼 치료와 돌봄이 필요한 가정은 지원금만으로는 겨울을 나기 어렵습니다.

“이 지원마저 없었다면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들이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건 현금지원 덕분이에요.”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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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밤얀(Bamyan)주 아한가르(Ahangar)에 사는 비비 굴(BiBi Gul)에게 ‘집’은 오랫동안 꿈같은 단어였습니다. 비비는 문조차 없는 동굴에서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천을 걸고, 추위를 견디려 피운 불의 연기에 눈이 따갑게 시려오는 나날을 견디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비비의 가족은 어렵게 집을 마련했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곧 전쟁이 일어나 가족은 모든 것을 두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집은 불타고 약탈당해 처참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한 남성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무장 인원을 이끌고 와 가족을 강제로 내쫓았고, 하루아침에 또다시 집을 잃은 비비와 가족은 다시 산속 동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비는 낡은 난로 위에 담요를 덮고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긴 겨울밤을 버텼습니다. 겨울이 오면 산사태가 일기도 했고, 눈이 내리면 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비와 가족에게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엔난민기구의 주거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새집과 새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담요, 방수포, 식기, 태양광 전등을 지원받게 된 것입니다.

“매일 공사장 근처에 가서 집이 얼마나 지어졌는지 몰래 지켜봤어요. 집이 생긴다는 말에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기뻤어요.”

새집이 완성되던 날, 남편 굴 모하마드(Gul Mohammad)은 설레는 마음에 바닥이 채 마르기도 전에 서둘러 난로를 설치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집이 있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주거 지원사업을 통해 주거지 및 화장실 건설을 지원하여 강제실향민의 안전과 존엄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전한 보금자리는 전쟁과 재난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추위와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뿐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줍니다.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헤라트(Herat), 파라(Farah), 바드기스(Badghis) 주 전역에 걸쳐 223개의 영구 주거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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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매섭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벽의 틈을 파고들고, 눈발은 며칠씩 그치지 않기도 합니다.

나디아(Nadiia)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최전방 지역인 자포리자(Zaporizhzhia)에서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낡은 집의 창문은 틀어진 지 오래고, 고장 난 보일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전쟁 이후 훌쩍 오른 물가에 전기 요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모자는 집 안에서도 늘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있습니다.

“요즘은 감자 같은 기본 식료품을 사는 것도 힘들어요. 전기를 오래 켜는 것도 무섭고요.”

밤이 되면 또 다른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예고 없이 울려 퍼지는 공습경보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요즘은 밤낮으로 폭격이 이어져 경보가 울리지 않는 날이 없어요.”

나디아는 밤중에 종종 잠에서 깨어 창밖을 바라봅니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는지, 아들은 곁에 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름에는 지하실로 대피라도 할 수 있었는데, 겨울에는 추위 때문에 대피할 수 있는 곳도 없어요.”

그녀의 가장 큰 걱정은 아들입니다.

“저는 이제 늙어서 괜찮아요. 그런데 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요.”

유엔난민기구는 전쟁으로 집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겨울철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난방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에 일회성 현금 지원을 제공하고, 집의 단열 기능을 개선하는 신속 단열 키트를 배포∙설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쟁 피해 주민과 국내 실향민이 머무는 임시 거처에 난방기를 설치해, 혹한 속에서도 최소한의 따뜻함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난방기를 설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웃집에서 난로를 빌려서 쓰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 집에도 따뜻한 공기가 돌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