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조 삭감 #1] 지금, 빈 자리
[국제 원조 삭감 #1] 지금, 빈 자리
더 이상 유엔난민기구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난민의 숫자 1,160만 명.
서울 인구의 두 배. 전국 초·중·고교 학생 수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
전 세계 1,160만 명이 도움의 손길에서 멀어졌습니다.
교실은 문을 닫았고 병원은 응급실조차 더 이상 환자를 받지 않습니다. 한 가족의 식탁 위엔 더 이상 식사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주요 공여국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국제 원조를 축소하면서, 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은 지난 10여 년 중 최저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사연을 지닌 가족과 이름을 가진 이들의 일상이 있습니다. 원조 삭감의 여파는 난민에게만 닿는 것이 아닙니다. 난민 가족과 그들을 받아들인 지역사회까지 모두가 그 고통을 분담합니다.
유엔난민기구가 활동 중인 전 세계 550여 개 지역 가운데 185곳 이상이 이미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는 ‘지원 중단’이 아니라, 곧 ‘삶의 중단’을 의미합니다.
이 보고서는 지금, 멈춰버린 삶의 빈 자리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2025년, 지원이 멈춘 빈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뿐입니다.
보호 활동에 필요한 예산이 크게 삭감되면서, 식수부터 보건, 교육까지 난민들의 삶을 지탱하던 모든 분야가 예외 없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프로그램은 기록적인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130개국에서 1,840만 명에게 보건, 교육, 식량, 사회 보장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보호 서비스가 제공됐습니다.
난민 지위 심사 평균 기간은 432일에서 369일로 단축되었습니다.
법률 지원은 140만 명, 귀환 상담은 35만3천 명, 실제 귀환은 난민 69만 명과 국내 실향민 28만8천 명에게 제공됐습니다.
460만 명이 시민권, 신분증, 법적 지위 증명서를 발급받았으며 이는 교육과 노동시장 진입의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100개국의 난민 보호 시스템이 개선되었고, 성폭력 예방 및 대응 활동은 86개국에서 170만 명, 아동 보호 활동은 78개국에서 150만 명의 아동과 보호자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난민 보호를 위해 오랫동안 쌓아 올린 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전 세계 1억 2,200만 명의 강제 실향민을 지원해야 하지만 확보된 자금은 전체 필요 예산의 23%에 불과합니다.
총 1조 9,600억 원 규모의 필수 프로그램 삭감되어 유엔난민기구의 핵심 기능이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법적 등록·보호 지연, 난민 보호 시스템 정체, 법률 서비스 중단으로 난민들이 착취·구금·강제송환 등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습니다.
유엔난민기구가 연말까지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은 4조 9,000억 원. 이는 작년보다 3분의 1 가까이 줄어든 수치입니다. 예산은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도움이 필요한 난민의 수는 2배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는 인력과 운영 규모를 대규모로 축소하면서도 난민 보호와 긴급 구호, 생명 유지를 최우선으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요 공여국의 원조 삭감이 불러온 재정 위기는 이미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결국 존엄한 삶과 최소한의 복지를 위한 필수 지원마저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지원 분야별 예산 삭감 현황
무너지는 배움의 자리
- 레바논에서는 교육 지원이 전면 중단되며 1만5천 명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사라졌습니다.
우간다에서는 교육 예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던 교사 급여가 삭감되면서 2,000명 이상의 교사가 더 이상 지원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학생 117명당 교사 1명이라는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해 교육과 학교 커뮤니티의 공백은 아동 노동과 조혼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사라진 치료와 보호의 망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는 의료와 보호, 등록 서비스가 하나 둘 멈춰가며 50% 규모의 보호 프로그램이 축소됐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간염 치료와 같은 중증 질환 치료와 식수 공급이 끊기며 수십만 명이 보건과 위생의 사각지대에 놓였습니다.
뉴만지 난민촌에서는 급성 영양 실조율이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키리얀동고 및 나키발레 난민촌에서는 1인당 물 공급량이 하루 8~10리터에 불과해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라진 삶의 터전, 사라진 방향
차드에서는 23만 명의 난민을 위한 이동 계획이 중단되었고 난민들은 국경지대에 머물며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니제르에서는 29만 명의 이재민이 보호소 없이 비바람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주거지의 부재는 특히 여성과 아동, 장애인에게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빈자리가 남긴 숫자들
전 세계 1,160만 명의 난민들의 생존과 회복을 돕는 긴급 구호 체계가 무너져 지원의 빈틈이 벌어졌습니다. 지원이 끊긴 자리에는 침묵과 절망만이 남고, 그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인도주의적 위험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빈 자리가 남긴 그림자는 국경을 넘어선 구조적 위기입니다.
무너지는 현장 속, 유엔난민기구는 현재 ‘생존 최우선 대응 계획’을 가동 중입니다.
‘생존 최우선 계획’이란 제한된 자원 속에서 지원 대상을 3단계로 나누고, 가장 긴급한 생명 구조 활동만 유지하는 전략입니다. 이로 인해 중장기적 보호와 복지 대응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지원이 필요한 주요 8개 국가에서 당초 3,340만 명을 돕기 위해 필요했던 17조 2,200억 원의 예산 중, 약 30% 가 삭감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는 현장에서 더 이상 모든 이를 도울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660만 명이 단지 ‘덜 위급하다’는 이유만으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우리는 모든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보다, 생존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참혹한 현실 앞에 서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도 멀리 있기에 조용한 비명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보고서는 위기 현장의 '빈 자리'를 기록하고, 숫자 뒤 멈춰버린 난민들의 일상을 전합니다.
그중 어느 한 곳이라도 작은 도움의 손길을 뻗기 위해 후원자님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후원자님이 건네주신 희망이 모여,
교실의 문이 열리고 아이들은 배움의 길을 향해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병원 문이 열리고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희망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음식이 놓이고 난민 가족들은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후원자님께 그 빈 자리를 다시 채우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