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요, 전부”: 벽 하나, 지붕 하나가 바꾼 삶
“전부요, 전부”: 벽 하나, 지붕 하나가 바꾼 삶
안녕하세요. 유엔난민기구(UNHCR) 요르단 사무소에서 대외협력 담당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전혜린입니다.
저는 2024년 11월부터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하 코이카)의 분쟁취약국 지원 사업을 담당하게 되어 요르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즈락(Azraq) 난민촌에서 전혜린 담당관이 만난 무나(Muna) 모녀
저는 요르단 현장에서 난민들이 처한 현실을 파트너들에게 전달하고, 그 이야기가 실제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며 현장의 이야기가 취약한 난민 가정의 삶을 바꾸는 변화로 이어지는 순간들을 직접 목격해왔습니다.
아즈락(Azraq) 난민촌의 전경
2024년 11월, 요르단에 도착했을 때, 저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시리아 난민 위기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곧, 2024년 12월, 시리아 기존 정부가 변화되면서 요르단에서 10년 넘게 피란 생활을 이어온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귀환의 길은 여전히 불확실했습니다. 돌아갈 집이 남아 있는지,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는지, 가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코이카 임시거처를 지원받은 시리아 난민 무나(Muna)
시리아 다라(Dara’a) 출신의 66세 난민 무나(Muna)는 그 현실을 제게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1년 전, 주요르단 한국 대사의 아즈락(Azraq) 난민촌 방문 때 무나를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무나는 코이카의 지원으로 마련된 새로운 임시거처로 막 이주한 뒤였습니다. 11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해 온 그녀는 건강 악화로 두 다리를 절단한 상태였지만, 새 거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1년 후, 새 임시거처가 그녀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직접 듣기 위해 다시 찾은 무나에게 새집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지 묻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했습니다.
"전부요. 전부요. 저는 이곳의 모든 것이 좋아요."
무나가 말한 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벽과 천장, 비가 새지 않는 지붕,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우리에게는 당연할 수 있는 것들이, 두 다리를 잃은 무나에게는 안전하고 존엄한 일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아즈락(Azraq) 난민촌 임시거처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가정
사람들은 흔히 거처를 벽과 지붕으로 생각하지만, 난민촌에서 거처는 건강과 안전, 접근성, 사생활, 그리고 존엄과 직접 연결됩니다.
잘 설계된 임시거처는 무나와 같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고, 가족들을 혹독한 날씨로부터 보호하며, 아이들에게는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줍니다.
아즈락(Azraq) 난민촌에서 임시거처 지원으로 안전한 삶을 살고 있는 모녀
코이카의 지원은 바로 그 기본적인 일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전쟁을 견디고 오랜 피란 생활을 이어온 한 여성이, 자신의 필요에 맞는 공간에서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즈락(Azraq) 난민촌에서 전혜린 담당관과 직원이 함께 만난 난민 아이들
난민 지원은 미래를 다시 세우는 일만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도 오늘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상실과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던 9천여 명의 난민들이 코이카의 지원으로 더 안전하고 편안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무나와 같은 이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움직이고, 가족들과 함께 더 안전하게 잠들며,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작지만 큰 일상의 회복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입니다.